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소녀시대 혐한류? 신경 꺼주셈

일본에서 우리 걸그룹에 대한 혐한류 만화가 나왔다고 해서 또 시끄러웠었다. 한류 뒤에는 한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고, 한국 아이돌들은 불공정계약에 시달리며, 소녀시대나 카라가 성상납을 했다는 식의 내용이 있다고 한다.

수많은 매체들이 '소녀시대가 성상납을? 도 넘은 혐한류 충격' 이런 식의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 네티즌들은 또 분노했고, 일본에 대한 공격적인 댓글들이 수없이 생산됐다. 방송 프로그램들도 이것을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

이럴 필요가 없다. 충격 받을 일도 아니고, 신경 쓸 일도 아니다. 한국 언론이 보도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혐한류 대책이 무어냐는 질문을 방송이 하고 있다. 대책? 최고의 대책은 분명히 있다.

바로, 신경 끄는 것이다.

혐한류는 한류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자국 젊은이들이 외국 연예인에게 넋을 놓고 있는데 반발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혐한류를 없애는 방법은 딱 하나다. 한류를 없애면 된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아예 신경 끄고 혐한류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 진정한 위협은 국가적 증오 -

한류의 진정한 적은 혐한류 따위가 아니다. 국가의식의 고조야말로 한류의 존립 자체를 공격하는 진정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약 중국인이거나 일본인인데 한국 문화의 침투를 막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국가 대 국가의 대립의식을 선동할 것이다. 하지만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법. 불씨가 필요하다. 어떤? 바로 상대국의 도발이다.

정부가 도발할 일은 없다. 한류 연예인들이 대놓고 외국을 공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약한 고리가 있다. 네티즌이다. 우리 네티즌들은 해외의 한국 폄하에 대단히 민감하다. 일본, 대만, 중국, 어디에서든지 일이 발생하면 즉각 분노의 댓글이 산을 이룬다.

인터넷 시대다. 한류가 퍼진 것은 인터넷을 통해 우리 동영상이 손쉽게 국경을 넘었기 때문이다. 댓글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댓글도 손쉽게 국경을 넘는다. 우리가 일본, 중국 네티즌의 댓글을 번역해서 보는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한다. 와중에 한국에 와있는 유학생들도 많다.

한국인 사이에서 외국에 대한 증오가 커지면 그 반작용으로 해외의 국가적 대립의식도 고취될 것이다. 그 증오와 증오의 대립 속에서 한류는 고래 싸움에 낀 새우꼴이 될 것이다. 소녀시대의 위협은 만화가 아니라 바로 이런 증오다.


- 보도할 필요가 없는 이유 -

우리 언론은 중국, 대만, 일본에서 조금이라도 혐한의 느낌이 나는 사건이 불거지면 대서특필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한국 네티즌의 국가적 증오를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한류는 필연적으로 혐한류를 만들고, 언론의 혐한류 보도는 필연적으로 증오를 키운다.

그 고리를 끊는 것은 무의미한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너무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방식으로 혐한류 기시장사를 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대만에서 한 방송인이 한류를 폄하했을 뿐인데 그게 무슨 큰 사건이라도 되는 양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식이다.

또 다른 혐한류 사례로 거론되는 소녀시대 패러디 AV비디오 사건도 그렇다. 이건 혐한류도 뭣도 아닌,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일본의 풍속이고, 패러디 문화일 뿐이다. 그들은 뭐든지 떴다 하면 성인비디오로 패러디한다고 한다. 그런 걸 우리 언론은 마치 일본에서 엄청난 소녀시대 폄하가 발생한 것처럼 보도했다.

얼마 전에 대만이 자주국가로서 너무나 당연한 자국 프로그램 의무 방송 비율 조정을 추진했는데, 그것을 '한류 통제' 혹은 '한국드라마 통제'라는 식으로 보도한 기사들도 그렇다. 이런 건 증오를 부추기는 선동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네티즌들은 이런 기사에도 궐기하며 대만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남의 나라 자국 프로그램 방송 비율 조정에 왜 우리가 분노하나? 소가 웃을 일이었다.

바로 이런 보도들이 한국인의 타국에 대한 증오를 키우고, 그것이 다시 타국인들의 경계심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선 자질구레한 혐한류 사례들을 일일이 대서특필해선 안 된다.

한류가 번성한다는 건 혐한류가 극히 소수라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의 댓글 분위기를 보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 아이돌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지원이나 성형 등으로 폄하하는 사람은 매우 적고, 성상납 운운하는 사람은 그보다 더 적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보도하는 것은 사태를 불필요하게 키울 뿐이다.

- 우리나 잘 하면 그만이다 -

판매자와 소비자가 싸우면 무조건 판매자가 손해본다. 소비자는 안 사면 그만이다. 한류를 내보내는 입장에서 타국인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건 바보짓이다. 혐한류 대응은 증오가 아니라 관용이어야 한다. 동네에 장사 잘 되는 가게집 주인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상기할 일이다.

물론 무조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 혐한류 만화의 경우는 소녀시대와 카라를 콕 집어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므로 소속사는 당연히 대응을 해야 한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우리 언론과 네티즌이 분노를 폭발시킬 필요는 없었다.

혐한류에 대한 진정한 걱정은 우리 자신의 의식에 있다. 한국처럼 이웃나라에 적대적이거나 혹은 차별적 감정을 품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현재는 자부심이 아주 큰 중국권이나 일본에서 혐한류 파문이 일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인 사이에서 동남아 차별이 만연하면 동남아에서도 결국 혐한류가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혐한류를 걱정한다면 우리의 타국에 대한 태도를 문제삼아야 한다. 보다 관용적이며 타국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이쪽이 증오를 접으면 저쪽의 증오도 줄어든다.

그리고 실력이다. 언론이 할 것은 외국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우리의 실력과 시스템을 향상시키도록 내부비판을 강화하는 일이다. 성상납이니 노예계약이니 하는 것도 다 우리가 빌미를 제공한 것들이다. 우리의 시스템이 합리화되고 실력이 최고가 된다면 혐한류가 있건 없건 한류는 저절로 잘 될 것이다.

한류는 문화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외국인이 한국의 문화를 선망하는 것이 한류의 진정한 바탕이다. 네티즌의 증오나 언론의 선동보도는 거꾸로 혐오스러운 문화를 만든다. 외국의 폄하에 일일이 분노하는 '찌질함'보다는, 대범하게 신경 끄는 '대인배'적 자세가 필요하다. 바로 그런 문화가 선망 받을 만한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