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탈코르셋이 또다른 코르셋이 된다면

 

최근 탈코르셋 운동이 대두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꾸민 모습을 내세우는 여성을 비난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꾸미는 여성을 가리키는 흉자라는 혐오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런 건 정상이 아니다. 

탈코르셋, 즉 꾸밈을 거부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여야 하는 것처럼 꾸밈을 하는 것도 자유여야 한다. 여성 아나운서가 렌즈 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 아나운서에게 렌즈를 강제한 것이 문제였다. 모든 여성 아나운서의 안경착용을 금지한 것이 악습이었던 것이다. 안경을 쓰건 안 쓰건, 렌즈를 끼건 안 끼건 각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면 그만이다. 마찬가지로 외모를 꾸미는 것도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 

그동안 일부 조직에서 여성에게 외모를 꾸미도록 강제하고, 사회적으로도 압력을 가했다. 그런 강제와 압력으로부터 여성이 해방되는 것이 바로 탈코르셋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쳐 탈코르셋이 또다른 압력과 강제가 된다면, 누군가에 대한 집단공격의 빌미가 된다면, 이것도 코르셋 못지않은 사회악이다.

 

탈코르셋을 사회의식을 판정하는 획일적인 잣대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탈코르셋하면 의식 있고 주체성 있는 바른 여자, 탈코르셋 안 하면 무지몽매한 못난 여자. 이런 식의 잣대 말이다. 탈코르셋을 해도 사회의식이 편협하고 덜 성숙한 사람일 수 있고, 탈코르셋을 안 했어도 충분히 사회의식을 갖춘 성숙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므로, 탈코르셋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해 사람들을 심판하고 흉자라며 공격하는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일부 페미니즘 진영에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올수록 다른 사람들의 반발심이 커질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장은 모두가 안 하는 것이 좋다. 일부는 하고 일부는 안 할 경우 차이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이 화장을 안 하면 공평해진다. 모두가 민낯이면 더 이상 민낯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화장 근절 운동을 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화장한 사람을 낙인찍고 집단 공격하는 데에까지 나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타인을 흉자라며 공격하는 사람들은 여성이 꾸미는 행위를 사회에 의해 강제된 가치에 굴종하는 행위 정도로만 인식한다. 하지만 꾸미는 행위가 여성 자신의 근원적 욕망일 수도 있다. 원천적으로 꾸미는 것은 짝짓기를 잘 하려는 행위로 볼 수 있는데, 짝짓기는 욕망의 최우선 순위이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도 꾸미기를 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욕망은 무의식중에 작동하는 것이라서 여성이 명시적으로 짝짓기를 잘 하기 위해 화장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런 욕망체계가 있다면 여성 자신이 원해서 꾸미게 된다. 꼭 사회의 강제에 굴종하는 행위는 아닌 것이다. 조롱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탈코르셋 운동은 조롱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선에서, 타인에게 가치를 강제하지 않는 한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요즘 일부 페미니즘 목소리가 지나치게 공격적이어서 대중의 반감을 사고 있다. 여성의 가슴에 성적인 의미가 없다며 여성의 상반신을 남성의 상반신과 같이 대우해, 여성 상반신 나체 사진을 자유롭게 유통되도록 하라는 식의 황당한 주장이 나오는 것도 페미니즘 진영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과도하게 공격적이거나 상식에서 벗어나는 주장은 걸러내야 세상을 더 빨리 바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