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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나가수, MBC가 네티즌을 '개티즌' 만들었다

<나는 가수다>의 김영희 PD가 경질된 것이 MBC 경영진 측의 결정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건 마치 MBC가 네티즌을 '개티즌'으로 만든 것과 같다. 시청자를 두 번 죽인 것이다.

네티즌을 '개티즌'으로 만들었다는 건 이런 얘기다.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 결정이 방영되고 난 후 수많은 네티즌이 프로그램을 비난했다. 그리고 그 다음 회가 진행됐다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스토리로 관심이 이어지며 그 전 이슈가 물타기 됐을 것이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종종 시청자의 욕을 먹는다. 그래도 '쇼'는 이어지며 새로운 국면 혹은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비난은 과거로 남기 마련이다. 다만 시청자들이 맹렬히 비난하는 데도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식으로 조금도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때 비로소 문제가 대단히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엄청난 욕을 먹은 <1박2일>이 또 부산야구장을 찾아 좌석을 독점하고 잔치판을 벌인다면 말이다. 물론 <1박2일>은 그러지 않았고 부산야구장 사태는 잊혀졌다.

그런데 MBC 경영진은 쇼가 계속될 기회를 단 한 주도 주지 않고, 비난 여론이 일자 김영희 PD를 즉각 잘라버렸다. 이것으로 네티즌이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불쌍한 PD를 끝장낸 것 같은 구도가 형성돼 버렸다. 전혀 자를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자름으로서, 비난했던 사람들을 졸지에 폭도로 만든 셈이다. 이런 이유로 MBC가 네티즌을 '개티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전혀 예고되지 않았던 현장 재도전 결정으로 시청자의 가슴에 한 번 비수를 꽂았다면, 그 상처가 자연치유되고 화해로 이어질 기회를 주지도 않고 대뜸 PD를 잘라 상황을 극단적으로 만듦으로서 시청자를 두 번 죽인 것과 같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디 무서워서 TV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이라도 하겠나? 행여 PD 잘릴까봐 입도 벙긋 못할 판이다. MBC의 막가파식 칼춤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재도전 파문의 책임자로 PD를 지목하고 비난하긴 했다. 여기에 대해 PD가 할 일은 책임지고 욕먹고, 여론을 수렴해 앞으로 잘 하면 되는 일이었다.


- 김영희 PD의 '본말' 의식은 바람직했다 -

김영희 PD는 <나는 가수다>의 경쟁 서바이벌 구조에 비난이 제기되자,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이 프로그램의 근본은 음악이다'라고 강력히 생각한나머지, 꼴찌가 나온 순간에 '음악이 본이고 경쟁은 말이다. 따라서 재도전은 말을 어기되 본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큰 패착이 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고의 과정에서 시청자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고, 사전에 공지된 원칙은 전혀 그것과 달랐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선 자다가 벼락 맞은 것처럼 황당한 일이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일이 안 되려고 했는지 하필이면 가장 선배인 김건모가 꼴찌를 한 것이 사태를 대단히 악화시켰다. 누가 꼴찌를 했어도 첫 탈락이니만큼 한 번은 구제해주자는 말을 누군가는 반드시 했을 것이고, 가수들도 막상 눈앞에서 벌어진 첫 탈락 사태에 충격 받으며 그에 동조했을 것이다. 이미 '서바이벌은 말이고 음악이 본이다'라고 마음을 굳힌 김영희 PD도 재도전 결정을 똑같이 내렸을 것이다. 다만 그 대상자가 약자인 후배였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약자 구제해주자는 데 반발할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하필이면 강자인 대선배 김건모가 꼴찌를 하는 바람에 '특권'의 구도가 되면서 일이 본격적으로 악화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일은 김영희 PD의 실수와 하필 꼴찌가 1인자 대선배였다는 천재지변적 우연이 합작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무작정 'PD 너 때문이야!'라며 자를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비록 시청자에게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있지만, '서바이벌은 말이고 음악이 본이다'라는 김영희 PD의 문제의식은 기본적으론 바람직한 것이었다.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면 크게 경계할 일이나, 좋은 의도가 부주의와 불운으로 인해 사단이 난 거라면 오히려 경영진 입장에선 PD를 격려해줬어야 했다. 그런 게 리더십이다. 그런 정도의 리더십이 있어야 시청자도 마음 놓고 비판을 할 수가 있다.

문제 생기면 무조건 담당자부터 자르고보자는 식으로 경영를 한다면 그 어떤 기업이 살아날 수 있을까? 이번 <나는 가수다> 사태에서 비난 받았던 사람들 모두에게 달리 이해받을 여지가 있다. 그런 여지가 전혀 없는 최악은 단연 MBC 경영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 점수는요, 빵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