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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강호동, 무엇을 오판했나

강호동은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며 <1박2일> 하차를 택했다. 보통은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에게 대중이 또 박수를 쳐준다. 하지만 강호동은 아니었다. 시청자는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거함 강호동호에는 그때 이미 구멍이 뚫렸다.

그랬다가 세금 관련 사건이 터진 게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으로 강호동을 비난할 계기가 됐다. <1박2일> 하차 때부터 사람들이 너도나도 강호동을 비난하니까 신이 난 언론 매체들이 '옳다구나 장이 섰구나'하며, '강호동이 수십 억을 탈세한 파렴치범이다'라는 식으로 기사장사에 열을 올린 것이 결국 파국을 낳았다.

강호동이 애초에 박수칠 때 떠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강호동에겐 원래 안티도 많았고 또 국민MC라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반발이 클 수밖에 없지만, <1박2일> 하차 선택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건 확실하다.

왜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을 좋아하던 국민이,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강호동에겐 화를 냈을까?

강호동이 판단을 잘못했다. 서로 경우가 달랐다. 국민이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지긋지긋하게 군림하는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국 근대화를 상징하는 지도자는 결국 죽어서야 권좌에서 내려왔다. 전두환으로부터 직선제 개헌을 따내기 위해서도 수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일제 때 부와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은 해방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한번 3김은 영원히 3김이었다. 수십년간 군림하는 맹주들의 정치. 경제계에서도 대를 이어 내려가는 경제권력. 정치적 토호들의 끈질긴 파벌정치. 국민들은 염원했다. '제발 박수칠 때 떠나다오'

이것은 황금의자에서 수십 년 간 뭉개지 말고 후세를 생각해서 내려와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강호동의 <1박2일> 하차는 정반대의 의미를 형성했다.

<1박2일> 하차 관련해서 나온 기사들을 종합하면 이렇다. '<1박2일>은 힘들고 고달프고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운신의 폭도 좁다. 프로그램의 인기도 떨어져간다. 그래서 강호동이 <1박2일>에서 빠진 다음,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한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건 황금의자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반대로 황금의자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이것은 '욕심'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비록 힘들고 고달프지만 국민이 사랑하는 프로그램을 위해서 전국을 누비는 고생'을 더 이상 안 하겠다는 메시지도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승기 사건도 안 좋았다. 이승기가 바로 직전에 황금의자(일본)을 찾아 떠난다는 말이 있었다. <1박2일>은 '힘들고 고달프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어서' 일본 진출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승기는 의리를 지킨다며 <1박2일>를 선택했다. 박수칠 때 떠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욕심의 반대인 희생이었다. 그러자 국민이 박수를 쳐줬다.

그런 상황에서 맏형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는 박수칠 때 떠나겠다'고 하니까 모양새가 많이 우스워졌다. 그 바람에 <1박2일> 폐지가 결정돼서 쪽박까지 깨버린 구도가 됐다.

강호동이 <1박2일>을 단순한 '시청률 1위 예능프로그램'으로 생각한 것이 패착이었다. <1박2일>은 단순한 예능프로그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방송이었다. 여기엔 국민의 사랑이 있다. 그것을 위해 고생하니까 박수도 쳐주고 국민적인 사랑도 몰아줬던 거다.

그러므로 강호동이 <1박2일>을 버린 건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사랑과 믿음을 저버린 의미를 만들었다. 이런 프로그램엔 박수 안 칠 때까지 있는 게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 더 좋았다.

시청자는 강호동을 버려도, 강호동이 먼저 시청자를 버리면 안 된다. <1박2일> 하차는 시청자가 아직 원하는데 그가 떠나버린 구도였다. 강호동의 입장에선 끝까지 '시청자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좋았다. 강호동은 <1박2일> 하차를 시청률 1위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국민은 더 이상 봉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그 차이가 오늘의 파국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강호동의 잠정 은퇴 결정은 좋은 판단이었다. 이것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는 이미지를 만들어 여론반전의 계기기 됐다. 강호동이 오판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숙고하면, 더욱 사랑받는 국민MC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