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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정글의법칙 조작 논란의 근본 배경은

 

최근 몇 주간 인터넷이 ‘정글의 법칙’ 조작 논란으로 뜨거웠다. 프로그램 출연진들이 생각보다 잘 먹고 잘 잔다는 폭로로 시작된 논란이었는데, 여기에 대해 대중은 대단히 뜨겁게 반응했다. 국무총리 정도 되는 사람의 비리 행각이 폭로됐을 때보다 반응이 더 컸다.

 

뒤를 이어 ‘정글의 법칙’ 아이템이 위험한 오지 생고생이 아니라 편안한 관광체험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작진은 의혹들에 대해 이런저런 해명을 했는데, 또 다른 의혹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폭로가 사실이냐? 정말 조작이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이런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리얼리티 전성시대가 시작된 이후 조작 논란은 일상이 되었다. ‘1박2일’이 한참 전성기를 누릴 당시에, ‘출연자들이 정말 밥을 굶는 거냐? 사실은 촬영 안 할 때 식당에서 포식하는 거 아니냐? 카메라 끄고 호텔에서 자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었다.

 

한때 예능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던 <패밀리가 떴다>도 참돔 조작 논란, 대본 연출 논란 등으로 ‘훅’ 갔다. 연초에 오연서의 열애설이 터지자, 애인 있는 사람이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와 연애하는 척하는 건 거짓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짝짓기 프로그램인 ‘짝’과 관련해서도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조작 논란이 한국 예능에서 최대 현안이 된 것이다.

 

 

 

◆속고 사는 데에 화가 난 대중

 

조작 좀 하면 어떤가? 원래 예술은 조작이다. 예능은 연출이고, 연출된 것은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중요한 건 조작을 얼마나 잘 했는가, 그래서 완성도가 높고 창의적인 웃음을 만들어냈는가이지 사실에 얼마나 충실했는가가 아니다. 사실 따위 아무려면 어떤가?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성이 절체절명의 미덕이 되었다. 지금처럼 속이지 않는 진정성이 중요했던 때가 있었을까?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은 계속해서 진정성을 애타게 찾고 있다.

 

속고만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총체적 불신의 시대다. 평생 존경 받았던 인사도 고위직에 임명돼 청문회만 했다 하면 치졸한 과거가 줄줄줄 나온다. 대형 매체도 못 믿고, 권력자도 못 믿고, 지식인도 못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B급 팟캐스트 방송에 대중이 열광하고, 인터넷에서 떠도는 각종 의혹제기나 음모론이 각광받는 것이다. 미네르바 현상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예능을 보면서도 ‘혹시 또 속는 것 아니야?’라는 의문을 지우질 못한다.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디 의심스런 구석이 없는지 뒤져본다. 캡쳐사진 판독은 기본이고, ‘정글의 법칙’ 의혹에선 위성사진까지 동원됐다. 댓글하나 제대로 관리 못해 절절 매는 국정원 요원보다 낫고, CIA도 저리가라다.

 

황당한 건 왜 예능프로그램한테 국무위원 청문회 수준의 진실을 요구하냐는 점이다. 진짜로 굶었으면 어떻고, 가짜로 굶었으면 또 어떤가? 엉뚱한 데에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이에 정말로 밝혀야 할 진실은 흘러가버리고, 우리 사회는 계속 믿지 못할 곳으로 남게 된다.

 

 

◆리얼리티와 생고생을 강요하는 시대

 

제진진도 원인제공을 하긴 했다. 요즘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정말로 실제상황이라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한다. 고생도 진짜로 하는 고생이고,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이라는 얘기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러니까 시청자 입장에선 자연스럽게 ‘그게 정말이야?’를 묻게 되고, 거짓말이 드러났을 때 더욱 화가 나게 된다. 그런데 제작진은 왜 실제상황을 강조하는 걸까?

 

사람들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제일 것을 요구하고, 연예인들이 극단적으로 고생할 것을 요구했다. 시청자가 요구하니까, 제작진들끼리 누가 더 실제상황을 그대로 담아내는가, 누가 더 연예인에게 생고생을 시키는가 경쟁이 붙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능 최고의 가치가 진정성이 되고, 조작논란이 최대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리얼리즘이란 말인가? 아니다. 리얼리즘은 사실과 상관이 없다. 리얼리즘은 현실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그런 현실이 아니라 그냥 극단적인 사실 그 자체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실제상황이 벌어지고 우발사태가 터지고, 그 과정에서 티격태격하기도 하면서 생고생을 하는 모습. 이런 날것의 모습은 1차적인 자극을 준다.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받기 때문에 앞으로는 실제로 싸우는 모습, 정말로 사람이 다치는 모습까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자극적인 날것이 환영받는 시대엔 예술이 설 자리가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술은 조작이다. 작가와 연출자가 조작하는 주체다. 사람들은 지금 대본과 연출을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작가, 연출자, 모두 빠지라는 것이다. 예능인들도 계속 아마추어 중심으로 충원된다. 그들이 날것의 모습을 보여주니까. 싱싱한 날것만이 절대선이라고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창조성을 숙성시키는 능력의 퇴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