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아버지, 절대호감이 되다

 

국민드라마라고 불렸던 ‘내 딸 서영이’가 끝났다. 이 작품은 말이 ‘내 딸’이지 내용으로 보면 제목을 ‘우리 아버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버지가 부각된 드라마였다. 시청자는 이 아버지들에게 뜨겁게 호응했다.

 

이 작품엔 세 아버지가 등장한다. 첫째, 서영이의 시아버지는 대기업 사장으로 전형적인 가부장적 아버지다. 가족에게 명령하고 부인을 언제나 무시한다. 그랬다가 부인의 가출을 겪은 후 급속히 초라해지면서 가정적인 남편이 된다. 노년기에 위축되는 아버지상이다.

 

둘째, 서영이 동생의 장인은 괴롭게 회사를 다니다 마침내 때려 치고 꿈을 찾는 아버지다. 이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 두고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찡했다는 중년시청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치어 산다는 이야기다. 이 아버지는 회사에선 사회적 관계에 잡혀 살고, 집에선 드센 부인에게 잡혀 살았다. 그러는 한편 나이를 먹어도 외모 관리나 취미에 몰두하는 노무족(NOMU족. No More Uncle의 약자. 더 이상 아저씨이길 거부하는 50대 중년 남성)을 표상하기도 했다.

 

셋째, 서영이의 아버지는 이 시대 서민 아버지의 표상으로 눈물과 공감의 핵심이었다. 이 아버지는 외환위기 이후 어려워진 경제여건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자식들에게 변변한 물질적 뒷받침을 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한없이 미안해한다. 서영이가 이런 아버지의 존재를 숨기고 재벌집에 시집갔지만 먼발치에서 딸을 지켜준다. 사위가 차에 치일 뻔하자 대신 치이기도 한다. 아낌없이 주는 아버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 그리고 힘없는 아버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상이다.

 

‘내 딸 서영이’는 이렇게 다양한 성격들을 통해 이 시대의 아버지를 그려냈고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아버지의 인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레미제라블’도 딸에게 헌신하는 ‘딸바보 장씨’의 이야기였다. ‘7번방의 선물’도 딸바보(진짜 바보)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아빠 어디가’도 아버지를 내세우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아버지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변천

 

과거 대중문화에서 아버지는 가부장적 이미지, 강압적 아버지였다. 엄격한 지배자라는 느낌이다. 그랬던 전통적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것이 저 유명한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였다. 여기서 대발이 아버지는 권위적 성격인데, 90년대 초 신세대의 약진을 맞이해 동요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래도 어쨌든 대발이 아버지는 권위를 끝까지 지켰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작품은 최초의 한류 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중국은 한국보다 일찍부터 여권이 신장됐다. 그런 중국에서 이 드라마가 방영되자, ‘아니, 아직도 저런 봉건적 아버지상이 있다니’하면서 복고적 감흥이 일어나 성공했던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에선, 한국 남편은 부인 때린다면서 안 좋은 이미지가 형성됐었다.

 

그랬던 한국의 아버지는 ‘사랑이 뭐길래’ 이후 급속히 힘이 빠져갔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에 아버지 신드롬이 나타났었는데, 이때의 아버지는 권위적 아버지가 아니라 정리해고 당한 아버지였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초라한 어깨가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요즘에 다시 아버지다. 요즘 아버지도 힘을 휘두르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선 외환위기 때와 같다. ‘내 딸 서영이’에 등장한 아버지들은 모두 약한 인물이었다. 최근 시청자의 찬사를 받고 있는 ‘롤러코스터 - 나는 M이다’에선 어머니가 패권적 괴물로 나오고(눈에서 레이저가 켜진다), 아버지는 어머니는커녕 딸들보다도 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 약함이 바로 따뜻한 보살핌, 부드러운 보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따뜻한 휴머니즘과 가족애의 시대에 아버지가 각광받는 것이다. ‘7번방의 선물’의 지적장애를 가진 아버지 설정은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 이미지를 극대화했고, 관객은 뜨겁게 공감했다.

 

 

◆딸바보의 진화

 

그런데 요즘 아버지에게 단지 약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아버지 캐릭터는 부드럽게 감싸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강인하게 지켜주기도 한다. ‘내 딸 서영이’에선 사위가 차에 치일 뻔한 걸 막아냈고, ‘레미제라블’에선 혁명의 혼란 한 가운데에서 사위의 목숨을 지켜냈다. 불안에 떠는 시대에 강력한 보호자를 원하는 대중심리는 그런 아버지에게 꽂혔다.

 

단지 약한 아버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한 보호자의 이미지도 있다는 것은, 딸바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딸바보는 처음에 원빈에게서 시작됐다. 이것만 보더라도 약한 아버지는 확실히 아니다. 그 다음엔 이승기, 박유천 등이 딸바보 소리를 들었는데, 이때의 딸바보는 딸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는 강하고 멋진 남성이었다. 그랬다가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의 이미지가 강화되면서 정보석, 류승룡 등이 지적장애를 가진 딸바보 아버지가 됐고, 천호진이 아낌없이 다 주는 딸바보로 등극했으며, 어차피 중요한 건 딸이 아니라 보호자로서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빠 어디가’의 아들 가진 아버지들도 유사 딸바보로 확장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부드럽지만 강한, 가족을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지켜주는 아버지가 절대호감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