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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꽃보다할배, 나영석PD는 날로 먹지 않았다

 

과거 나영석 PD는 그 유명세에 비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었다. <무한도전>이 매 주 새로운 기획으로 도전하는 데에 반해, <1박2일>은 같은 형식을 계속 우려먹었기 때문이다. 나영석 PD는 <1박2일> 속에서 계속 등장했기 때문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김태호 PD처럼 찬탄을 얻어내진 못했다.

 

<무한도전>은 유재석의 <무한도전>이기에 앞서 김태호 PD의 작품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1박2일>은 보통 강호동의 <1박2일>이라고만 생각했고, PD 자리는 누가 맡더라도 흐름에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여겨졌다. 강호동이 주도하는 게임과 여행을 잘 전달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영석 PD의 유명세는 <1박2일>이라는 안정된 포맷과 강호동의 카리스마 진행에 묻어간다는 인식이 컸다. 하지만 이번 <꽃보다 할배>가 그런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놓고 있다.

 

 

 

하도 닳고 닳은 리얼 버라이어티 포맷이라서 이제 무슨 새로운 게 나오랴 싶었다. 강호동도 ‘<1박2일>+<패밀리가 떴다> 해외판’ 정도의 느낌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했지만 시청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더 생생하고, 더 리얼하고, 더 인간미가 풍기는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었다. <맨발의 친구들>은 젊은 스타 연예인들을 모아놨지만 그런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반응이 안 좋았다. 나영석 PD는 이런 흐름, 시청자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냈다.

 

‘할배’ 컨셉은 그런 나영석 PD가 선택한 신의 한 수였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아저씨 중심 프로그램이다. 나 PD는 아저씨 캐릭터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할배 캐릭터까지 나아갔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 <맨발의 친구들>이 상상 가능한 선에서 기획됐다면, <꽃보다 할배>는 상상의 한계를 깨버렸다. 노년층이 주도하는 예능프로그램을 한국에서 누가 시도할 수 있었을까!

 

노년층 출연자들은 이미 시청자의 시선에 일희일비할 연배가 지났기 때문에 자기의 성격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이것이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보다 리얼할 것, 보다 생생할 것이란 덕목에 그대로 들어맞았다.

 

나 PD의 기획력, 혹은 두둑한 배짱(?)은 <꽃보다 할배> 구성에 재미를 위한 장치를 안 했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1박2일>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복불복 게임으로 원성을 들었다. 유재석도 가는 곳마다 게임을 제안한다. 예능의 달인들이 이렇게 게임을 사랑하는 이유는, 게임을 해야 긴장감이 형성되면서 짜릿한 재미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PD는 놀랍게도 <꽃보다 할배>에 게임을 전혀 배치하지 않았고, 게임을 대체할 만한 다른 특별한 구성도 시도하지 않았다. 카메라는 그저 관찰만 할 뿐인데, 카메라의 거리가 <1박2일>보다 인물로부터 더 멀어졌다. 그래서 정말 좌충우돌 이어지는 진짜 배낭여행을 엿보며, 함께 체험한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그리고 출연자들의 인간미도 더 강하게 느껴진다.

 

요즘에 사람들은 감각적인 재미보다 진솔하고 소탈한 인간미를 더 중시한다. 나 PD가 게임 등 긴장을 끌어낼 수 있는 구성을 포기한 것은, 이런 흐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꽃보다 할배>에서 드러나는 나PD의 능력은 또, ‘신의 편집’에 있다. 사실 노년층 연예인을 섭외해서 여행하는 모습을 소탈하게 보여주는 포맷은 그 전에도 있었다. 저녁 시간대에 하는 고향 탐방 류의 프로그램들이 거의 이런 포맷이고, 해외 여행 프로그램들도 이런 포맷을 종종 취한다. 하지만 재미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었다.

 

<꽃보다 할배>는 사소한 모든 사건사고들을 예능 소재로 만드는 탁월한 편집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들의 여행이 그렇게 특별할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었을 리가 없다. 편집의 마법이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비범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나영석 PD는 <꽃보다 할배>를 통해 자신이 편집 스토리텔링의 대가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출연자들이 파리 에펠탑에서 잠깐 쉬었다가, 지하철로 이동해 밥을 먹고 개선문을 구경한다는 극히 단순한 여행기가 <꽃보다 할배>에선 눈을 떼기 힘들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표현됐다. 이것은 편집의 힘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재미다.

 

나영석 PD는 한 마디로, 또 하나의 <아빠 어디가>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아빠 어디 가>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꽃보다 할배>도 천진난만한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기획, 섭외, 편집에 의한 스토리텔링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진 프로그램인데, 그 중심에 바로 나 PD가 있다. 나 PD는 강호동과 <1박2일> 포맷의 힘으로 날로 먹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꽃보다 할배>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젊거나 어린 사람을 좋아한다. 아이 사진은 잠깐만 봐도 반사적으로 기분이 좋아지지만, 노년층 사진엔 그런 효과가 없다. 그래서 노년층은 예능 캐릭터로 장수하기가 힘들다. <꽃보다 할배>에는 이런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서 롱런을 장담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나PD가 더욱 비범한 능력으로 <꽃보다 할배>를 장기 성공시켜주기 바란다. 이 프로그램엔 대중문화판에서 소외된 노년층을 끌어안는다는 중대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