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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축구협회 홍명보 사태가 참담한 이유

 

홍명보 감독이 만신창이가 된 후에야 뒤늦게 사퇴를 발표했다. 월드컵 탈락 직후에 모든 책임을 지며 사퇴했다면 지금처럼 그의 이미지가 추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시점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 사이에 분당 땅 논란 등 사생활까지 난도질당하며 사태가 최악으로 전개됐다.

 

유임한다고 했다가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말을 바꾸는 구차한 이미지로 비쳐진 것도 홍명보 감독의 위신을 더욱 추락시켰다. 그러나 이건 축구협회 측의 문제였다. 애초에 홍 감독은 벨기에전 이후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축구협회가 강력히 만류, 유임을 발표했다고 한다. 결국 축구협회의 어이없는 상황판단이 홍명보 감독의 이미지를 최악으로 만든 것이다.

 

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결정한 이유가 워낙 이상했다. ‘시간이 없었고, 홍 감독이 혼자 책임지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등의 이유였는데, 이런 비슷한 조건에서도 칼 같이 대표팀 감독을 경질했던 과거와 너무나 상충되는 말이었다.

 

이것은 기왕에 퍼져있던 축구협회와 홍명보 밀착설, 특혜설,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순한 양’ 등의 속설을 더욱 강화해 홍 감독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축구협회의 결정은 끝까지 이상했다.

 

애초에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이 된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는 프로 리그에서 클럽팀 감독 생활을 정식으로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산전수전 다 겪어야 선수들의 컨디션을 한 눈에 알아보고,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오더라도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전술적 유연성이 생기고, 매순간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경기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 답이 나오는 법이다. 바로 그것이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인데, 아무리 천재적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도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노련함을 이루기 어렵다.

 

 

 

물론 풍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잘 맞는 특정한 조건에서 놀라운 성적을 낼 수는 있지만, 조건이 달라지면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지도자로서 다양한 조건과 마주쳐보는 것이 중요하다. 축구협회는 그런 경험이 없는 홍명보에게 국가대표팀 지도자를 맡겼는데 이건 특이한 시도였다.

 

이번 월드컵 탈락 이후에라도 홍명보 감독이 바로 사임하고, 클럽 지도자 생활을 거친 후 차차기 월드컵 대표팀을 다시 맡아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뭐가 그리 애가 탔는지 계속 홍명보 감독을 싸고 돌며, 그에게 대표팀 지도자를 지속적으로 맡기려 했다.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행태가 나오니 인맥축구, 황태자 감독 소리가 통하는 것이다. ‘엔트으리‘ 논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결과다. 사실 감독이 자신이 잘 아는 선수들 위주로 얼마든지 팀을 꾸릴 수 있다. 독일의 클로제도 독일내에선 여론이 좋지 않았으나 뢰브 감독의 신뢰로 대표가 됐다고 한다. 이 경우도 일종의 ‘엔트으리‘인 셈이다. ’엔트으리‘는 어디에나 있다. 이것이 유독 한국에서 논란이 된 것은 지금까지 설명한 상황으로 인한 불신 때문이다.

 

워낙 인맥축구, 축구협회의 황태자들만 대접받는 축구, 사립 명문대 출신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퍼져있는 상황에서, 홍명보가 아는 사람들 위주로 대표팀을 만들고 게다가 대학 후배인 박주영을 중용하자 ‘엔트으리’ 논란이 터져나왔다. 애초에 믿지 못하니 뭘 해도 구설수가 된다. 축구협회의 결정은 그 믿지 못하는 상황에 기름을 끼얹어왔다.

 

그 결과는 한국인으로 대표팀 감독을 선임할 수조차 없게 된 참담한 현실이다. 불신이 만연해 끝없이 의심받고 리더십이 공격당한다. 그래서 차라리 히딩크처럼 국내의 기득권, 인맥 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외국인 감독을 원하게 됐다. 첫째, 세월호, 둘째, 고위공직자 청문회, 셋째, 월드컵 대표팀 논란. 우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는 3연타가 터졌다. 결론은 ‘도무지 믿을 데가 없다’는 자괴감. 한국사회 선진화는 요원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