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이병헌 문자에 분노하지 않는 사회

 

이병헌과 이지연이 나눈 문자 메시지 대화가 공개된 후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접촉한 사람들 가운데, 그 문자에 대해 분노하는 이를 딱 한 명 봤다. 분노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뜻이겠다. 관련 기사의 인터넷 댓글들을 봐도 그런 분위기다. 분노하는 내용은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어느 개인이 다른 개인과 나눈 사적인 대화가 언론에 공개된 사건이다. 이렇게 사생활이 까발려진 사건에 왜 아무도 분노하지 않은 걸까?

 

사람들이 분노한 건 이병헌의 남녀관계였다. 그런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 관심을 가질 당사자는 이병헌의 부인인 이민정이었다. 정작 이민정이 가만히 있는데 제 3자들이 총궐기해 타인의 남녀관계에 대해 열을 올리는 건 이상한 풍경이었다. 이병헌의 남녀관계라는 사적인 영역에 대한 분노가 화산 폭발하듯 터지는 사이, 정작 중요한 문자 공개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라져버렸다.

 

공직 부패와 관련된 사안이라든지, 국가 기강과 관련된 사안이라든지, 정치적 음모와 관련된 사안이라든지, 이런 공적인 문제일 땐 관련자들의 메시지를 당연히 공개하고 추궁해야 한다. 하지만 남녀관계 메시지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일 뿐이다. 한국의 언론들은 이 사적인 메시지가 마치 공직 부패의 증거라도 되는 양 사명감(?)을 가지고 대서특필해댔다.

 

문자 메시지의 내용이 사적인 사안임에 반해, 문자 메시지가 공개된 사실 자체는 언론이 시민의 사생활을 까발린 공적인 문제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은 문자의 내용이 아닌, 문자를 공개한 행위여야 했다. 언론이 시민의 자유 영역을 침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병헌 문자가 범죄의 증거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지연 측은 계속 해서 자신이 이병헌과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했으며, 그것이 마치 이번 협박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듯 행동했고, 문제의 문자는 이지연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정황 증거인 것처럼 보도됐다.

 

하지만 그 문자의 내용은 둘의 관계를 증명한다고 하기엔 매우 이상했다. 이병헌이 혼자서 이지연에게 계속 관심을 표하다, 자신이 경솔했다며 관계를 정리하자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병헌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안 이지연은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이것을 보고 둘이 사귄 증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이지연이 이병헌의 결별 통보에 상처받았다는 것도, 문자 내용으론 증명이 안 됐다. 문자만으로만 보면 이병헌이 그만 정리하자고 하자 그간 소극적이었던 여자쪽에서 오히려 반가워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이지연 측의 주장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보긴 어려운, 그저 사람들의 호기심만을 충족시켜주는 가십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이병헌을 질타하고, 조롱하고 싶었다. 이 문자는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터뜨려주는 불쏘시개가 됐다. 이 사건에선 이병헌과 관련된 사적인 정보들이 계속 흘러나오며 협박 사건의 본질이 흐려진 진흙탕이 되어왔는데, 문자 공개가 그 절정이었다.

 

아무리 남의 내밀한 사적 관계가 궁금하고, 또 누군가를 사적인 문제로 질타하고 싶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궁금하다고 까발리고, 얄밉다고 까발리다보면 사적인 권리가 설 곳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것은 우리 시민의 자유 영역이 줄어드는 것과 같고, 자유 시민이라면 이런 일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이병헌 문자 공개 사건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분위기는 이상했다. 이 얘길 이병헌 옹호라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건 우리 모두의 시민적 자유에 대한 옹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