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천만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민족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명량>도 민족정서를 건드려서 신화적인 흥행성과를 거뒀다. 특히 최근 아베 등 일본 우익들의 준동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정서가 고조됐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항일 역사를 다룬 영화를 내놨으니 국민적 반응이 나타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암살>이 아니었어도 독립군 이야기이기만 하면 무조건 천만 영화가 됐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독립군 영화나 드라마가 별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그런 기획들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관객/시청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민족정서는 민족정서고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최동훈 감독이 독립군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말렸다고 한다. 독립군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고들 하지만, 독립군 대작 영화를 만든 사람도 집안이 망할 가능성이 크니까.
우울한 식민지 시절의 이야기를 일반적으로 그렸다면 천만 대박은커녕 중박도 힘들었을 것이다. 최동훈 감독은 두 가지를 선택했다. 첫째,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립군 이야기를 제작한다. 둘째, 제작하기는 하되 일반적인 독립군 이야기가 아닌 철저한 오락영화의 틀로 만들어낸다.
바로 여기서 전지현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고뇌와 숭고한 결단이 부각되는 일반적 독립군 영화였다면 전지현 원톱은 패착이었을 것이다. 전지현에게 그런 무거운 연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지현의 강점은 스타일이다. <암살>은 그런 전지현 스타일의 강점을 극대화했다. 오락영화로서, <암살>에 중요한 것은 연기가 아닌 스타일이었다.
전지현은 <암살>에서 거의 패션쇼를 선보인다. 무거운 독립군 의상에서 화사한 영애 의상, 그리고 웨딩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보는 이의 눈을 호강시킨다. 하정우도 중후한 남성미 의상을 자랑한다.
특히 액션에서 전지현 스타일이 빛을 발하는데, 그것은 바로 코트와 ‘기럭지’의 힘이었다. 길쭉길쭉한 전지현이 코트 입고 달리면서 총을 쏘는 장면은 상당한 시각적 쾌감을 만들어냈다. 과거 <놈놈놈>에서 정우성이 만들어냈던 쾌감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전지현이 정우성 액션을 재현한 셈이다. 하정우의 코트 액션도 홍콩 액션영화에 못지않은 감흥을 선사했다.
<암살>은 이렇게 액션의 쾌감에 집중했기 때문에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다. (비록 연기력보단 스타일의 힘이었지만) 이번에 전지현이 원톱으로 천만 영화를 감당해냄으로서 그녀는 배우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지금까지 따라붙던 CF 모델 전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진정한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암살>의 최대 수혜자는 전지현이다.
우리 국민도 <암살>의 수혜자다. <암살>이 ‘다행히도’ 전지현 기럭지를 앞세운 오락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그리하여 항일의 역사를 되새기게 됐다.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지사도 새삼 알려졌고,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에 헌신한 집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렇게 우리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결국 민족적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우리 민족정기 회복의 바탕이 된다.
우리가 우습게 여기는 아베 등 일본 우익은 근대 애국지사들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 지사들의 삶과 뜻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자기네 일본을 강국으로 만들려 한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 근대 애국지사들의 뜻을 얼마나 잇고 있을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우리는 침략세력의 강요가 아닌 우리 자신의 무관심에 의해 이미 역사를 잊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지현의 ‘기럭지’ 액션이 의미 깊다. 이 액션으로 <암살> 천만을 이끌었고, 근대사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오락영화로선 보기 드문 성취다. 최동훈 감독의 또 다른 오락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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