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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워낭소리 고영재PD의 선택과 심형래

 

얼마 전에 <워낭소리>를 제작한 고영재 프로듀서가 영화의 수익금 30%를 독립영화 발전에 쓰겠다고 했다. 관객 100만 명 기준으로 추산했을 때 약 9억 원 정도의 금액이라고 한다. 9억 원이면 가난한 제작자 입장에선 엄청난 거액이다.


그는 “독립영화가 좋아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감독, 정책활동가, 각종 영화제의 상근 실무자들 그리고 각종 협회의 상근자들이 좋은 여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라고 했다.


국가가 국가재정으로 해야 할 일을 사비로 하려는 것이다. 이런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직접적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본인에겐 손해이나, 장기적으로 독립영화 활성화라는 국익이 발생해 국민에게 보탬이 된다. 국민을 위해 이런 손해를 감수할 개인은 별로 없으므로, 대체로 이런 일은 국가의 몫이다.


하지만 <워낭소리>의 고영재 프로듀서는 공익을 위해 사익의 축소를 감수했다. 이런 것을 일러 ‘시민의 공공적 책무’를 다한다고 표현한다. 기득권층이나 사회지도층 혹은 정치인, 즉 ‘공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우리 사회는 연예인더러 공인이라며 사생활 캐는 용도로 쓰고 있다. 이런 차에 고영재 프로듀서가 공인의 행위가 어때야 함을 보여줬다.


물론 고영재 프로듀서는 공인이 아니다. 공인이 아닌데도 공공적 책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진짜 공인들이 부끄러워 할 일이다. 


- 심형래도 공인은 아니지만 -


고영재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영화가 잘 되는 것은 관객이 제작진에게 준 선물이고 그 선물은 반드시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자세다'라는 것이 제가 일관되게 가져온 철학”


흥행은 관객이 제작진에게 준 선물이므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극단적인 부의 집중, 양극화-민생파탄이 진행되는 한국의 사업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난 이 기사를 읽었을 때 심형래 감독 생각이 났다.


심 감독도 공인은 아니다. 그가 영화 수익금으로 사회에 이바지해야 할 의무는 전혀 없다. 하지만 <디워>의 흥행은 <워낭소리>보다 훨씬 더 사회에 빚진 것이다. 그러므로 심 감독은 한국사회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디워 100분토론’에서 진중권 씨는 <디워>가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거기에 아무런 반박을 못했다. 그저 <디워>가 한국영화이나 잘 봐주자고만 하며, 냉정한 평가를 보류하자고 했다.


이것은 수많은 ‘디빠’들을 격분케 했다. ‘디까’들은 그것을 애국주의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디워>가 형편없는 작품이라는 평가는 분명히 맞는 것이었고, 그 영화를 우리가 봐줘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산품’이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게 분명한 사실이었다. 또, 그런 영화를 지켜주기 위해선 당연히 ‘평가’를 보류해야 했다.


만약 한국인이 <디워>를 냉정하게 평가했다고 치자. 그랬다면 <디워>의 흥행이 가능했을까? <디워>의 작품성을 상찬하며 <디워> 흥행이 절대로 애국주의가 아니라고 했던 ‘디빠’들은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디워>가 중국이나 일본이나 헐리우드 영화였다고 해도 자신이 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보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권했을까?


내가 극장에서 <디워>를 본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국산품이었기 때문이고, 본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권한 이유는 단 하나, 영구아트무비가 망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인위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망할 것 같았으니까.


이렇게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영구아트무비를 도와준 관객들은 별로 없었겠지만, <디워>의 흥행엔 분명히 ‘국민적 성원’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워낭소리>가 받은 선물, 그 이상의 거국적 성원을 <디워>는 받았던 것이다.


- <디워>는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다 -


이것은 <디워>가 <워낭소리>보다 더한 빚을 국민에게 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빚을 갚는 방법이 꼭 수익금 배분일 필요는 없다.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우리 기술로 더 놀라운 혁신을 이루어내면 그 자체로 국익이 된다. 그렇게 따지면 <워낭소리>도 수익금을 내놓을 필요까지는 없다. 더 좋은 독립영화로 국민에게 보답하면 된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수익금의 일부를 국민을 위해 내놓는 길을 선택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디워>도 혹시 수익이 났다면, 수출흥행실적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수익의 일부를 한국 영화기술 발달을 위해 공유하면 어떨까?


국민적 성원으로 성장해서 수출매출실적만 강조하는 것은 한국의 재벌들이다. 그들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영구아트무비에 대한 국민적 성원을 고깝게 여겼던 진보파들에겐 이런 한국현대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깔려있다. 한국에서 국민은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주기만 하고 받아본 적이 없는 불쌍한 존재다.


그런 나라이므로 더더욱이나 자기가 잘해서 얻은 흥행결과를 ‘관객의 선물’이라며 내놓는 고영재 프로듀서의 선택이 빛나는 것이다. IMF 금모으기 수준의 국민적 성원을 받은 심형래 감독이야말로 국민을 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영구아트무비의 재정상황을 알 순 없지만, 만약 <디워>에서 이익이 났다면 적어도 10% 정도는 국가를 위해 쓸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영구아트무비>는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고, 지속적인 국민성원이라는 항구적 이익을 획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