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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고현정과 한효주 여왕이 되다


 드라마계의 여풍이 무섭다. 남자 배우로는 뚜렷이 부각되는 사람이 없고, 여자 배우가 이슈의 중심이 되는 분위기다. <내조의 여왕> 때부터 이런 경향이 감지됐다. MBC는 <내조의 여왕>의 뒤를 이어 <선덕여왕>을 편성하면서 여풍의 진원지가 됐다. 여왕 이연타다.


 <선덕여왕>이 시작될 당시엔 이미 <자명고>와 <남자이야기>가 진행중이었다. 만약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먼저 시청자의 시선을 잡았다면 <선덕여왕>은 성공하기 어려운 구도였다. 하지만 둘 다 대중의 눈에 드는 데 실패했다. 결국 <선덕여왕>이 화려하게 월화의 여왕에 등극하는 데 성공했다. 방영 4회만에 <선덕여왕>의 시청률은 20%를 돌파했고, <남자이야기>와 <자명고>는 10% 미만에서 허덕였다.


 이중에서 <남자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무거운 드라마다. 막장극이나 경쾌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요즘 대중에게 <남자이야기>는 지나치게 어두웠던 것 같다. 중심이 되는 남성 캐릭터도 이렇다 할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채도우역의 김강우만 소수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을 뿐이다.


 <자명고>는 여성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드라마다. 하지만 너무 진지하다. 정려원, 박민영 등의 청춘스타가 간판인 드라마이므로 당연히 경쾌한 로맨스 판타지 퓨전사극일 거라고 기대됐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하서사극의 길을 갔다. 그러나 청춘스타 때문에 아주 그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어정쩡한 대하서사극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속에서 진지한 연기를 펼치는 중견연기자들은 중견연기자대로 어색하고, 청춘스타는 청춘스타대로 어색한 유감스러운 분위기가 됐다.


 그러던 차에 <선덕여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고현정이 ‘강림’했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가면을 쓴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것은 <동방불패>에서 임청하의 첫 등장을 연상시켰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도 <동방불패> 임청하에 못지않은 마성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배우 고현정을 드디어 ‘발견’했다.


 악인이며 팜므파탈(요부) 캐릭터를 맡은 고현정은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 시청자의 찬사가 쏟아진다. 컴백한 이후 매스컴의 호들갑이 아닌 시청자의 순수한 찬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드라마의 제목은 <선덕여왕>이지만, 정작 여왕은 선덕여왕역이 아닌 미실역의 고현정이 되었다. 마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마성의 여왕’에 등극한 것이다.


- 코미디의 여왕 김선아 주춤하다 -


 수목극은 전체적으로 저조하다. <신데렐라맨>과 <그저 바라보다가>는 초반의 약세를 역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신데렐라맨>은 남성 간판인 권상우를 내세웠지만, 권상우에게 박힌 미운털은 끝까지 빠질 줄을 몰랐다. 드라마 자체는 크게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그저 바라보다가>는 황정민과 김아중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김아중이 여신의 광휘를 뿜어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게다가 극 초반에 좋은 인상을 줬던 황정민도 캐릭터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계속 같은 자리에서, 즉 바보처럼 착한 남자라는 한 지점에서만 맴돌았다. 그 때문에 착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얻었지만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최근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변화하며 반등하고는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단독질주했던 건 <시티홀>이었다. <시티홀>은 김선아와 차승원이 간판이다. 차승원은 아마도 요즘 드라마의 남자 배우들 중 가장 멋진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그 차승원을 디딤돌로 해서 우뚝 선 건 김선아였다.


 김선아는 코미디의 여왕답게 극 초반부터 몰아쳤다. <시티홀>은 김선아의 코미디를 보여주려고 작정한 드라마처럼 보였다. 시청자들은 그런 <시티홀>과 김선아를 지지했다. 처음엔 황정민과 김선아가 어느 정도 경쟁구도를 형성하는 듯 했으나 이윽고 <시티홀>이 홀로 시청률 10%대 후반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하지만 20%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김선아는 중반에 들어서면서 코미디의 여왕이 아닌 눈물의 여왕처럼 보였다. 연약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을 흘려대기 일쑤였던 것이다. 이것은 김선아의 매력과 동떨어져보였다. 극의 분위기도 중반에 들어서면서 무거워졌다. 이 때문에 초반의 바람을 발전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장이 된 이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열려있다.


- 눈물의 여왕 한효주 -


 눈물의 여왕이 될 사람은 김선아가 아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한효주가 주말극 <찬란한 유산>으로 눈물의 여왕에 등극했다. <찬란한 유산>은 30%로 주간 시청률 전체 1위에 올랐다. 여기에 일등공신이 바로 한효주였다.


 <찬란한 유산>은 <1박2일>의 이승기가 나쁜 남자로 나온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드라마다. 스타성은 분명히 이승기가 앞선다. 그러나 <찬란한 유산>이 전체 1위로 치고 올라갈 때까지 극을 지탱한 사람은 분명히 한효주였다. 이승기는 초반에 평면적인 나쁜 남자의 모습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 기간 동안 한효주는 절절한 눈물 연기에서, 똑 부러지는 정의녀, 밝게 웃는 명랑소녀까지 입체적인 캐릭터로 극에 활력을 부여했다.


 요즘 한국인은 칙칙하거나 무거운 것을 싫어한다. 한효주의 눈물이 특이한 것은 그녀가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칙칙해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명히 절절하게 울고 있는데 화면은 화사해보인다. 이런 기묘한 매력이 한효주를 눈물의 여왕에 등극케 했다. 만약 한효주가 마냥 어두운 모습으로만 비쳤다면 네티즌에게 인상녀라는 찬사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찬란한 유산>에선 이승기까지 살아나고 있다. 처음엔 평면적인 나쁜 남자였던 이승기가 점차 한효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가면서 입체적인 나쁜 남자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준재벌집 외동아들 캐릭터인 이승기의 미묘한 변화는 왕자님-신데렐라 코드를 염원하는 대중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한효주와 이승기가 쌍끌이에 나서는 <찬란한 유산>의 미래는 밝아보인다.


 정리하면 이렇다. 아침드라마를 사수하는 장년층 주부를 제외한 한국의 드라마 애호가들은 요즘 월요일, 화요일엔 마성의 여왕인 고현정의 매력에 놀라고 있다. 곧 등장할 이요원이 과연 고현정의 마성에 맞설 수 있을 지 걱정도 하고 있다. 수요일, 목요일엔 코미디의 여왕인 김선아를 뭔가 아쉬워하며 영접하고 있다. 코미디에 만세삼창을 부를 준비가 되어있으나 극이 덜 웃기는 것이 문제다. 주말엔 빈털터리 눈물의 여왕 한효주와 준재벌집 나쁜 남자 이승기의 경쾌한 신데렐라 통속극을 즐긴다. 그렇게 주말이 가고, 다시 고현정의 마성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