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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왕비호, 닉쿤에게 황당한 망발

지난 <개그콘서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지막에 왕비호가 독설하는 시간에 2PM이 나왔다. 2PM 멤버들을 차례차례 거론하던 중에 닉쿤 차례가 되었다. 그때 왕비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왕비호는 이렇게 말했다.

“애가 진정성이 없어. 태국사람이라며? 태국사람이면 누가 봐도 태국사람처럼 생겨야지.“

어떻게 이런 말을 방송 중에 할 수 있으며, 그걸 자르지 않고 방송한 제작진은 또 무엇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닉쿤은 누가 봐도 잘 생겼다. 왕비호도 닉쿤 외모의 뛰어남을 인정하며 말머리를 꺼냈다. 그런 다음 태국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러면 왕비호가 말하는 ‘태국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란 말인가?

과거에 88올림픽을 맞아 당시 유행하던 ‘시커먼스’가 하차 당했다고 한다. 한국에 세계 각국인들이 오는데, 그들이 흑인의 외모를 우스개로 삼는 방송을 보면 기분이 나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한국인은 아시아 동쪽 끝에서 우리끼리 아주 오랫동안 오순도순 살았기 때문에 남들 신경 쓸 필요가 별로 없었다. 시커먼스 에피소드를 보면, 88올림픽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우리가 드디어 국제적인 소양을 갖추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그럼 뭐하나? 아직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태국사람이 이 방송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잘 생겨서 인기를 얻는 태국인을 데려다 놓고, 왜 태국인처럼 생기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모습에 기분이 좋을까?

요즘 소녀시대, 카라, 2PM 등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어느 일본방송에서 소녀시대가 예쁘기 때문에 한국사람 같지 않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기분이 될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형빈과 <개그콘서트> 제작진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방송은 우리끼리만 보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각국에서 우리 방송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 연예인이나 방송제작진들에게도 국제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의식수준은 반만년 단일민족 우물 안 개구리 그때 그 시절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올해에만 해도 정형돈과 김용만이 중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방송에서 대놓고 했으며, <엠카운트다운>에서도 중국인 비하 방송이 나왔었다. 동남아시아를 비하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오랜 악습이다. 잘 생기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며 동남아시아 분위기라고 웃어대는 것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러면 혐한의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가, 경제개발을 조금 먼저 했다고 이렇게 타국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한국인은 얼마나 ‘재수 없는’ 존재인가?

요즘 신한류 자랑이 한창인데, 진정으로 문화적 중심국가가 되려면 세계적 시야가 반드시 필요하다. 타국인, 타문화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 발달한 나라가 바로 문화가 발전한 나라다. 자기 잘난 줄만 알거나, 타국인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회는 결코 문화적 중심이 될 수 없다.

누군가는 닉쿤이, 우리가 느끼는 태국인의 느낌이 아닌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론할 것이다. 우리의 느낌은 우리의 입장일 뿐이다.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가를 거론하며 외모를 우스개 꺼리로 삼는 것은 극히 위험한 행동이다. 얼마 전엔 필리핀을 거론하며 영어 억양을 묘사했다가 필리핀 사람들이 분노했던 사건이 있었다. 국가 혹은 인종을 거론하는 것은 이렇게 위험하므로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개그콘서트> 왕비호의 태국 토크는 결코 있어선 안 될 망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