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려가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담덕에게 저항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당신이 재벌 3세야? 신의 섭리야? 그래 이제 그건 알겠어. 인정인정. 하지만 웃기고 있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위대한 보통 사람이야!”


하고 침을 뱉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신의 섭리에 침을 뱉지? 그건 죽는 것이다.


“요건 몰랐지? 메롱메롱.”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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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하늘은 전지전능하다.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다. 그럼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신이 꿇어 눈 깔아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면서 넙죽 엎드려 알아모셔야 하나?


아니 그건 곤란하지. 인간에겐 신이나 하늘에게 없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죽는 것. 신이나 하늘은 다른 건 다해도 죽을 순 없다. 스스로 죽는 건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권능이다.


생명은 신이 줬다고 치고. 자기의 유기체를 보존하려는 본능,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 모두 신이 줬다고 치고. 아니 사람이 언제 달랬나? 신이 자기 맘대로 준 것이다.


예컨대 로봇에게 있어서 신인 인간도 로봇을 만들 때 자신의 몸을 지키라는 기본원칙을 프로그래밍해서 준다. 단! 그것이 인간에 대한 위해와 충돌하지 않을 때에 한해서. 만약에 로봇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자폭한다면? ‘웃기지 마세요. 난 나야. 한낱 신(인간)의 피조물 따위가 아니야.’라는 선언이 되겠다.


신이 준 그것들을 몽땅 거부하고 버리는 것이다. 무엇으로? 바로 인간의 의지로. 연가려라는 한 연약한 인간이 이 의지를 통해 위대한 비극의 주체가 된다.


만약 연가려가 자기의 사리사욕을 위해 계속해서 음모를 꾸몄다면 비극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냥 극은 권선징악으로 흘러간다. 이런 게 전형적인 오락극의 구도다.


하지만 연가려는 그렇지 않았다. 담덕이 주신의 왕으로 밝혀지고 난 후 그는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신의 섭리에 저항하겠다고. 그는 당당히 담덕에게 선언한다. 당신이 왕인 이유가 단지 하늘의 섭리 때문이라면 난 인정 못하겠다.


이런 거다. ‘재벌 3세가 회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단지 회장의 자손이기 때문이라면 난 인정 못하겠다.’


 

죽음으로 항거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라. 당신이 왕(=회장=경영자=리더)의 자격이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보이라. 결과의 평등을 원하는 건 아니다. 즉 모두가 왕이 되는 걸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회의 균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누구도 회장이 될 자격을 원천박탈당해선 안 된다는 것. 신의 섭리, 부모 잘 만나서가 아니라 능력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는 충성의 원리와 하늘에 대한 저항 사이에서, 둘 다를 취하기 위해 결국 죽음의 길로 간 것이다. 생명체로서 자신의 모든 것인 생명을 버리고도 도저히 부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거다. 바로 ‘우리가 하늘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단 말인가? 난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분노.


기하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섭리의 끈이 그에겐 죽을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레지스탕스의 길을 간다. 주신의 왕도 거부하고, 화천 땅의 어머니 노릇도 때려 치고, 수천 년간 인간을 농락해온 섭리를 걷어차고 그 자신이 스스로 기원이 되려 한다.


인간 기하는 연약한 인간 연호개와 함께 자기 자식을 주신의 왕 자리에 앉히려 하는 것이다. 화천의 장로도 하늘에 대한 대결의식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 이미 하늘과 적대적 공생관계인 화천의 섭리에 매여 있다.


 

연가려는 자유인이 되었고 기하는 자유인이 되려 한다. 그렇다면 담덕은? 단지 섭리가 지위를 보장해주는 재벌 3세일 뿐인가? 태왕사신기의 구도가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당연히 담덕은 하늘의 섭리 이상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서서히 보여주고 있다. 담덕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개방적인 리더십이 그것이다. 여느 제국처럼 정복하고 착취하는 방식이 아닌, 미국처럼 정복하진 않되 착취만 하는 방식도 아닌, 주신의 방식으로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 형제가 되는 것이다.


전장에서 보이는 용기는 기본중의 기본일 뿐이다. 항우는 그런 것이 다 있었지만 그에게 패왕이 자질이 있었다고는 아무도 여기지 않는다. 주신의 왕은 당연히 홍익인간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미국식의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공존을 보장하는 리더십이다.


담덕은 지금 이런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주신의 왕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연호개와 연가려는 그걸 모른다. 기하와 화천회에겐 그런 것은 어차피 관심사가 아니다. 각자가 그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그 자신의 정당성으로 목숨을 걸고 발을 땅에 딛고 버티고 있다.


구도를 이렇게까지 구축해온 태왕사신기에 경의를 표한다. 이렇게 되면 전에 태왕사신기가 맹탕으로 가고 있다고 했던 것 이미 취소했지만 한번 더 취소다. 점점 재밌어지고 있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