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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미투 쓰나미 문화예술계를 덮치다

 

지난 해 10월 미국 영화계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됐다. 성폭력을 당한 대중예술계 여성들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고발에 나선 사건이다. 한국의 문화예술계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문화예술계로서의 기본적인 속성이 있고, 그동안 여러 가지 소문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피해사례가 누적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미투 운동이 한국 문화예술계로 넘어오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임을 드러내기엔 아직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판단된 것이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가해자들이 보통 강력한 문화권력이어서 피해자와 업계 관계자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한국 문화예술계의 미투 운동은 요원할 것으로 여겨졌다.

역시 한국의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가 아닌 곳에서 시작됐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간부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것이다. 임은정 검사도 자신의 피해를 고발했다. 한국사회가 뜨겁게 반응했고, 검찰이 전격 조사에 나서 현직 부장검사가 구속되는 일까지 나타났다. 연일 성추문 관련 기사가 나오며 잘못된 성관념, 관행, 갑질 등을 개탄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언론사들은 성추문을 고발하는 미투의 목소리를 샅샅이 찾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최영미 시인이 계간 황해문학’ 2017년 겨울호에 게재한 시가 뒤늦게 주목 받았다. ‘노털상 후보로 거론되는 En 선생의 성추문을 고발하는 괴물이라는 시였다. 누가 봐도 노벨상 단골 후보이자 한국 문학계 거목인 고은을 가리키는 내용이었다.

이미 미투 운동에 호응할 만반의 준비가 돼있던 한국사회는 유명 시인 고은에 대한 고발에 강하게 반응했다. 오랫동안 행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쉬쉬했던 악습이 마침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침묵하던 문단계 인사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류근 시인은 ‘60~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다며 소위 문단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 가운데 고은 시인의 기행과 비행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라고 썼다. 침묵의 카르텔은 깨졌다.

 

-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 -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자 마침내 한국 문화예술계의 철옹성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고발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출발은 연극계였다. 한 공연 관계자가 SNS를 통해 2년 전에 연극배우 이명행으로부터 성추행당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작품 연출가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오히려 작품에서 빠지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연극계 카르텔까지 고발했다. 이명행은 사과문을 내고 출연중인 작품에서 중도하차했다.

이때, ‘공연계에서 성폭력 논란은 과거부터 비일비재하게 들어왔다’, ‘피해자가 공연계를 떠날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엔 문제 제기가 쉽지 않은 상황’, ‘대학 때 엠티 가서 술 먹고 자고 있던 여자애들 다 주물러댔던 남자선배는 좋은 이미지로 광고까지 나왔다등의 연극계 인사들의 증언이 보도 되며 과연 용기 있는 피해자가 나서서 실명 고발을 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때 연극계 거대 권력인 이윤택 성추문이 터진다. 이윤택은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며 밀양연극촌을 세운 인물로 연극계에서 큰 산맥과 같은 인물이다. 그가 과거 국립극단에서 성폭력을 행사했다가 국립극단에서 배제됐다는 보도가 뒤늦게 나왔다. 당시엔 박근혜 정부에 밉보여 블랙리스트에 오른 때문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이제야 성추문으로 밝혀졌다.

이 보도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아직 유명 연출가 A로 지칭됐다. 하지만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직접 미투폭로에 나서며 이윤택이라는 이름이 마침내 공개되기에 이른다.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던 이윤택이 부적절한 안마를 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그뒤 추가 폭로에 이어 심지어 성폭행 피해를 당해 낙태했다는 배우의 주장까지 나왔다. 문화예술계가 발칵 뒤집혔고 결국 이윤택이 매체 앞에 나서서 공개 사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며 또 다른 폭로가 나왔고, 피해자들이 공동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이윤택 사과 이후 또 다른 폭탄이 터진다. 이윤택 못지않은 연극계 거대 권력인 오태석의 성추문이 터진 것이다. 배우 출신 A씨가 ㅇㅌㅅ이라는 앞글자의 연출가에게 23년 전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여럿이 술을 먹던 고깃집에서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만졌다는 것이다. 합석한 다른 사람들은 침묵했다고 했다. 뒤이어 다른 여성이 과거 오태석 연극의 뒤풀이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오태석이란 이름이 공개됐다. 두 명의 큰 어른이 연이어 추문에 휩싸이자 연극계는 충격에 빠지는 한편, 일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방조한 연극계 시스템도 문제라는 자성이 제기됐다.

 

- 조민기까지 성추문의 주인공으로 -

 

그 다음엔 배우이자 청주대학교 교수인 조민기가 추문에 휩싸였다. 인터넷 게시판에 연예인 ㅈㅁㄱ가 학교에서 몇 년간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뜬 것이다. 매체들의 취재로 조민기라는 이름이 드러났는데, 조민기 측은 명백한 루머라며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이러한 조민기의 해명이 도리어 더 강력한 고발을 촉발했다. 청주대학교를 졸업한 신인 배우 송하늘이 자기 실명을 공개하며 장문의 글로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다. 조민기가 학교 주변에 있는 자신의 오피스텔로 학생들을 불러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거나, 노래방에서 부적절한 접촉이 있었다는 등의 주장이다. 다른 학생들의 폭로도 잇따르며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들이 나타난다. 밀양연극촌 촌장인 인간문화제 하용부 씨에게 성폭행당했다는 내용도 있다. 현재 사실관계가 규명될 때까지 문화재청의 지원금이 보류된 상태다. 뮤지컬 타이타닉, ’시라노등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변희석 씨가 성희롱, 동성 성추행 등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남 김해에서 유력한 극단 활동을 했던 연출가가 10년 전에 제자인 여중생을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오달수, 조재현도 논란 끝에 사과했다.

 

그밖에 SNS를 통해 더 많은 사건들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조차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연극계 유명 인사 중 몇몇을 뺀 대부분이 부적절한 행위의 가해자라는 주장도 나왔고, 특히 연예계의 문제는 장자연 사건 이래로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예계는 일단 터지면 너무나 크게 터질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비교적 잠잠하다는 분석도 있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고발에 나설 수 있도록 응원하는 위드 유(withyou·당신과 함께하겠다)’ 운동도 나타났다. 성폭력 관련 글을 올리며 위드유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이다. 뮤지컬배우 김지우는 ‘17살 때부터 당연하게 내뱉던 어른들의 언어 성폭력을 들으며 무뎌져 온 나 자신을 36살이 된 지금에야 깨닫게 됐다. 마음을 담아 지지한다며 위드유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외에도 많은 연예인과 일반 네티즌이 동참하고 있다. 창작집단 LAS는 단원들의 손바닥에 위드유라고 적은 사진들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문제 -

 

보통 공무원은 시험을 통해 임용된다. 반면에 문화예술계 캐스팅엔 객관적인 시험이 없다. 전적으로 유력자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일단 임용된 공무원은 윗사람 심기를 거슬러도 임용취소되는 일이 없지만, 문화예술계에선 캐스팅 됐다가도 권력자 눈밖에 나면 취소되기도 한다. 이윤택의 요구를 거부한 여배우도 캐스팅 축소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문화예술계 신참자일수록 권력자에게 절대적으로 매인 신세가 된다.

문화예술계는 군웅이 저마다 자기 영토를 가지고 할거하는 봉건시대와 같다. 국가 전체를 뒤흔들 권력은 없더라도, 관계자들로 구성된 자기만의 작은 세계 속에선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이윤택을 그 세계의 왕처럼, 조민기를 해당 학교 예술대 캠퍼스의 왕처럼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 구중궁궐 속에서 쉬쉬하며 벌어졌던 일들이 미투 운동을 통해 까발려지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욕망을 표현한다. 기존의 도덕률, 제도 등을 창조성에 대한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곧 자유로운 예술혼이라고 여긴다. 기존 사회가 가장 크게 억압하는 것이 성에너지, 본능적 욕망이기 때문에 그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절대권력, 마초의식과 합쳐지면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연예계에선 이런 철학적 배경과 상관없이, 신인 연예인에 대한 연예계 권력자의 절대적 우위에 의해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그 세계의 다른 구성원들이 권력자의 일탈을 방조하는 것도 문제다. ‘예술가는 그런 존재려니하는 잘못된 예술관, 성폭력에 둔감한 업계 풍토, 두려움, 미성숙한 시민의식, 조직우선주의, ‘군사부일체적 사고방식 등으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자가 된다. 바로 이래서 그분들의 일탈이 유지됐던 것이다. 당국에선 각 분야별로 몇 개의 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피해자가 고발로 인한 2차 피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만 신고센터도 활성화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드유운동과 매체의 관심이 중요하다. , 가해자가 가벼운 처벌만 받고 돌아와 다시 선생님으로 내 위에 서는 일이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만 더 많은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