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작은 신드롬을 일으켰다. ‘태양의 후예’나 ‘도깨비’처럼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건 아니지만, 그런 드라마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초반에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다. 남주인공인 정해인이 송중기, 공유를 잇는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올드팝으로 이루어진 OST도 화제다. 중국에서도 반향이 나타나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의 실시간 검색어 1위, 드라마(중국 전체 드라마 포함) 해시태그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집중하는 멜로드라마다.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에 다니는 윤진아(손예진)와 윤진아 친구의 남동생인 서준희(정해인)의 사랑을 그린다. 연상연하 스토리인 것이다. 정해인이 국민 연하남에 등극했다.
‘태양의 후예’나 ‘도깨비’와 같은 한류 대작의 스케일은 없다. 그 흔한 해외 로케조차도 없이 오직 두 사람과 그 주변인들의 일상만으로 드라마를 꾸려나가는 소품이다. 잔잔하고 단조로운 이야기다보니 중반 이후엔 지루해진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초반에 두 사람의 사랑이 무르익는 단계에선 시청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그야말로 ‘설렘의 핵폭탄’이 터졌다. 죽어버린 연애세포도 소생시키는 기적의 전개였다.
이 작품이 문제작이 된 것은 범상치 않은 일상 묘사 때문이다.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처럼 적당히 아름다운 일상을 스케치하듯 그리지 않는다.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한다. 이런 사회적 묘사에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한 안판석 PD가 이 작품의 연출자다.
안판석 PD의 사회적 묘사가 빛을 발한 치정멜로극이 JTBC ‘밀회’였다. 재벌 재단 관리자인 김희애와 예술대 신입생인 유아인 사이의 불륜 멜로를 그린 이 작품은, 사학재단을 운영하는 재벌 집안과 교수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신랄하게 파헤쳤다. 사회지도층의 위선과 갑질 행태를 극사실주의적으로 그려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는 치정멜로극을 사회 문제작의 반열에 올려놨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치정멜로가 아닌 순수멜로다. 어른들의 끈적끈적한 관계가 아니라 수채화처럼 투명한 파스텔톤의 사랑을 그린다. 하지만 그 배경엔 ‘밀회’처럼 치밀한 현실 묘사가 존재한다. 윤진아가 당해야 하는 상사의 치졸한 갑질, 여직원들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성희롱, 성추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여직원들이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워한다는 회식자리의 풍경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남자 친구와 이별하면서 당하는 스토킹, 이별 후 폭력 등 이 시대 여성들의 공포증도 그려냈다. 위아래로부터 치이는 회사원의 고충도 표현됐다.
이런 현실 묘사 덕분에 이 작품은 단순한 멜로극이 아닌 사회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시청자의 공감 지수도 높였다. 정말 현실적이어서 시청자가 자기 이야기처럼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 현실에 너무나도 멋진 연하남과의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얹었다. 치열한 현실묘사로 현실의 남루함이 부각될수록 연하남과의 사랑이 달콤해진다. 이렇게 해서 이 작품은 사실적 현실묘사라는 작품적 가치와 연애 판타지의 재미를 모두 구현한 명작이 되었다. 안판석 PD가 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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