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어벤져스3’의 스크린 독점을 관객들이 환영하는 현상이다. ‘군함도’가 2027개 스크린으로 개봉했을 땐 엄청난 비난이 있었다. 독점은 필름유통 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감독과 배우는 상관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류승완 감독과 송중기에게도 불똥이 튀었었다. 류승완 감독이나 송중기가 인터뷰할 때 ‘군함도’ 스크린 독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추궁처럼 제기됐고, 관련 댓글이 줄을 이었다. 거의 조리돌림, 인민재판 수준으로 비난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땐 아무리 불합리한 집단 공격이어도, 시장 독점에 대한 대중의 당연한 우려라고 이해할 여지가 있었다. 전국 2890개 스크린 중에서 한 영화가 2000개 넘게 차지한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스크린 수 2000개는 하나의 상징,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대중이 ‘군함도’ 독점을 질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벤져스3’은 무려 2461개 스크린을 차지했다. ‘군함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 독점이다. 상영 횟수 점유율로 따졌을 때 ‘군함도’는 점유율 55%였는데 ‘어벤져스3’는 70% 이상이라고 한다.
이러면 ‘군함도’ 때 이상으로 비난 여론이 나타나야 정상이다. 외국 영화라서 더 그렇다. 외국 상품이 우리 시장을 온통 휘저으면 반감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 인지상정이 뒤집혔다. ‘군함도’ 때 그렇게 스크린 독점에 분노했던 사람들이 ‘어벤져스3’의 독점엔 조용하다. 거꾸로 스크린 독점을 지적하는 기사에 분노한다. ‘기레기’의 ‘꼰대’질이라며, 수요 많은 영화를 많이 트는 것은 당연하단다.
심각한 문제다. 역차별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상품을 우리 시장이 보호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외국 상품을 보호해주고 우리 상품에 쌍심지를 켠다. 외국 상품이 우리 시장을 잠식하는 것에 경각심이 너무 풀어졌다.
기업에 대해서도 우리 기업을 저주하는 경향이 자주 나타난다. 삼성이 망하길 빌면서 저주하고 대신에 애플은 찬양하는 식이다. 현대차 기사에도 묻지마 저주가 나타난다. 정상이 아니다. 물론 우리 대기업들이 지배구조나 경영 방식에서 실망스런 모습을 많이 보였다. 거기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국 기업을 응원하는 식은 곤란하다. 밉든 곱든 우리 기업은 우리 국민 경제의 일부분이다. 묻지마 저주는 자살골이다.
상품도 그렇다. 우리 상품이 잘 돼야 우리 국민 경제가 살아난다. 맥주처럼 무조건 우리 상품을 저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우리 영화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요즘 상황은, 지지는 고사하고 헐리우드 영화에 역차별이나 안 당하길 빌어야 하는 판이다. 헐리우드 영화는 독점해도 찬양 받고 우리 영화는 조리돌림 당하니 말이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
네티즌이 ‘어벤져스3’ 독점을 옹호하는 논리도 문제다. 시장의 수요가 있으니 거기에 맞추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다. 시장은 그냥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독점으로 흘러간다. 그것을 막기 위해 제도적 개입,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네티즌이 ‘어벤져스3’ 독점을 옹호하는 논리는 바로 이런 개입과 규제를 부정하는 생각이다.
이러면 시장의 안전성이 무너진다. 한쪽으로 완전히 쏠린 배는 결국 전복된다. 항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 같은 시장주의 국가에서 괜히 반독점법을 만든 게 아니다. 독점이 시장에 독약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 영역에선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만으로 시장을 다 채우면 상업성이 범람해 장기적 발전 동력이 사라진다. 제도적으로 다양성이 보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화 강국이라는 프랑스가, 영화 한 편이 전체 스크린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스크린 상한제를 법으로 정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 상품, 우리 기업에 적대적이고 반대로 해외 상품에 턱없이 호의적이며, 수요자의 선택에 100% 맞추라는 식의 여론이 범람하는 지금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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