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가 연말 방송 3사 가요대전에서 모두 엔딩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먼저, SBS 가요대전에선 글자 그대로 대미를 장식하는 엔딩이었다. KBS 가요대축제의 마지막곡은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였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출연자들이 함께 하는 뒤풀이 성격이어서 마치 해외특집 한류쇼 마지막의 ‘아리랑’ 합창과 같은 것이었고, 본무대 마지막 가수는 엑소였다. MBC 가요대제전의 마지막곡은 HOT의 ‘빛’이었는데 이 역시 뒤풀이 성격이었고, 본 무대 마지막은 엑소였다.
지상파 3사가 모두 엑소를 2018년 최고의 가수로 지목한 셈이다. 방탄소년단은 3사 프로그램에서 모두 엑소 직전 순서에 배치됐다. 이건 매우 황당한 일이다. 올해 방탄소년단은 한국 현대사에 남을 수준의 엄청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은 한국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위상에 올랐다.
심지어 한 시사주간지가 방탄소년단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정치, 사회, 경제, 대중문화 등 모든 영역을 통틀어 방탄소년단이 가장 빛났다고 해당 매체는 판단한 것이다. 대중가수가 이 정도 대우를 받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사태다. 그럴 정도로 방탄소년단은 올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지상파 3사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엑소를 마지막에 내세웠다. 우리 지상파 연말 행사는 공정하지 않기로 악명 높은데, 이번 방송 3사 가요대전 엔딩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각각의 방송사 내부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SM 기획사의 영향력이 작용해 마치 방송사들과 SM이 짬짜미를 한 거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만한 구도가 됐다. SM이 적극적으로 움직였건 SM은 가만히 있는데 방송사들이 알아서 움직였건 말이다. 엑소의 엔딩 석권을 대형기획사 ‘빽’ 말고는 달리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와중에 MBC 가요대제전은 1부 엔딩 동방신기에, 2부 마지막곡까지 SM 출신 HOT의 ‘빛’이어서 노골적으로 ‘SM대잔치’ 같은 인상을 줬다. 이것이 의도된 기획인지 우연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는 그랬고, 엑소 엔딩 석권에 이은 SM 위력 과시의 결정판으로 인식됐다.
이런 풍경을 보며 뮤지션 지망생들은 ‘반드시 SM에 들어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국민은 ‘아무리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내도 방송사와 대형기획사 기득권 시스템 앞에선 어쩔 수 없구나’라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대표선수가 월드컵 득점왕을 했는데 축협 회장 아들이 한국 최우수선수로 뽑힌 격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신뢰가 바닥인 나라다. 사회적 신뢰는 공정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 믿음을 길러주는 것이 신상필벌의 엄정함이다. 잘 하면 잘한 만큼 대우받는다는 믿음이 뿌리 내려야 신뢰가 자라난다. 그걸 앞장서서 보여줘야 할 방송사가 해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다. 2018년엔 방탄소년단이라는 역사적인 존재가 나타났는데 그마저 밀리면서 방송사 연말 행사 불신의 끝장을 보여줬다.
방송사들이 방탄소년단과 국민에게 연말 ‘참교육’을 시전한 느낌이다. ‘이 나라는 ’빽‘이 있어야 대접 받는 나라’라고 말이다. 씁쓸한 연말이 됐다. ‘빽’ 없는 국민에게 새해의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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