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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동백꽃 필 무렵, 따뜻함이란 것이 폭발했다

 

KBS '동백꽃 필 무렵이 지상파 드라마 부활을 선도하고 있다. 미니시리즈로는 이례적인 18%대 시청률로 20%선까지 넘본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이 작품 얘기를 듣는 일이 많다. 그건 이 작품이 신드롬적인 인기를 누린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20% 돌파도 꿈만은 아니다. 그야말로 돌풍이다. 

장르물이 유행하고 미드 감성이 우리 드라마에 이식되면서 드라마가 삭막해져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한 작품들이 젊은 팬들에겐 환영받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시청층도 있었다.

 

그럴 때 동백꽃 필 무렵이 시작됐다. 옹산이란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곳은 이상하게 모든 주민이 가족처럼 지내는 곳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주민들이 으레 골목 평상에 모여 있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평상에 모여 있다. ‘응답하라 1988’은 과거 시점이이 때문에 그땐 그랬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현재 시점이다. 아무리 지방 소도시라고 해도 요즘은 전통 공동체가 많이 와해됐다. 그러므로 드라마 속 옹산의 가족적인 풍경은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사투리를 진하게 구사하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판타지적 성격이 강하다. 드라마 속에서 옹산은 나름 번화한 소도시인데, 요즘 그 정도 소도시 시민들이면 사투리를 그렇게 강하게 쓰지는 않는다. 남주인공 용식이 판타지의 절정이다. 경찰로, 결혼도 안 한 젊은 사람인데 사투리를 80년대 고향 드라마 수준으로 진하게 쓴다. 

사투리뿐만 아니라 성격도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지극히 순박하다. 그 순박함으로 여주인공 동백에게 돌진한다. 최근 들어 이성에게 대시하지 못하고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썸만 타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이 답답함 속에서 용식은 거두절미하고 돌진하는 폭격형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시청자들이 터졌다.

 

응답하라 1988’에서 따뜻한 동네 풍경에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던 것처럼, ‘동백꽃 필 무렵의 마을과 촌사람들도 시청자에게 위로를 전해준다. 세상이 삭막한데, 드라마까지 삭막해져가는 속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따뜻한 드라마를 기다려왔다. 작품은 아주 과장된 따뜻함으로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줬다. 

따뜻함의 절정은 엄마. 용식이 엄마가 보여주는 자식을 향한 사랑. 동백이 엄마가 보여주는 애끓는 사랑. 돈이 없어 딸을 고아원에 버리고 평생 동안 그 딸 곁을 돌며 몰래 지켜주다가 마지막에 생명보험금 타게 해주려는 모정이 안방극장을 울린다.

 

이밖에도 모든 사람들이 작정하고 따뜻하다. 동백이를 구박하는 것 같았던 시장 아주머니들은 동백이 뒤를 캐려는 기자를 우린 조직으로 움직이니께라면서 쫓아내고, 진상 같았던 노규태와 차도녀 같았던 홍자영 모두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다. 동백이를 버렸던 강종렬, 동백이 등을 친 것 같았던 향미도 그렇다. 파출소 경찰들까지도 훈훈하다. 

이 따뜻한 판타지에 시청자가 빠져든 것이다. 여기에 살인마 까불이로 미드 감성인 미스터리 스릴러 코드를 살짝 추가했다. 이건 마치 응답하라 1988’에서 남편이 누구냐에 대한 호기심이 시청률의 한 축을 견인했던 것처럼, ‘까불이가 누구냐는 물음으로 작품 인기를 더욱 들끓게 했다.

 

결국 응답하라 1988’처럼 촌스럽고 착한 사람들의 대책 없이 따뜻한 이야기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조미료를 살짝 친 것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거기에 용식이의 순박 돌진 로맨스까지 유효타가 됐다. 핵심은 요즘 보기 드문 따뜻함이란 정서다. 사회에서도 드라마판에서도 훈훈함이 희귀해졌을 때 옹산 판타지 동백꽃 필 무렵이 당도했고 한국사회가 반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