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노다지 시장이 있으니 바로 아이들 시험 잘 보게 해주는 장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 석차를 올려주겠다는 장사다. 한국인이 원하는 것은 시험성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석차가 올라가는 것이다.


성적이 90점이면서 10등하는 것보다, 50점이더라도 1등하는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울대에는 1등이 가는 것이지 시험 점수 높은 학생이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바로 한국의 입시경쟁은 ‘석차경쟁’이라는 것.


우리나라의 교육정책과 사교육비경감대책은 모두 이 대목을 놓치고 있거나,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석차경쟁이라는 본질을 무시하고 모두에게 시험을 잘 보게 해주겠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사교육비경감대책이 바로 EBS수능과외다. 전 국민이 보는 방송으로 시험 잘 보는 법을 가르쳐주면 사교육비가 사라진다는 황당한 정책인데, 이 결과 사교육비는 오히려 더 늘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공부할 분량도 더 늘었다. 이젠 학교 수업에, 학원 수업에, EBS강좌까지 챙겨 봐야 한다. 사교육비를 잡기는커녕 아이들만 잡았다.


이런 정책은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준다. 자기 자식을 명문대에 들여보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인데 티비에서 그 방법을 알려 준다니 만세삼창을 부르며 티비 앞으로 달려든다. 허나 어쩌랴. 내가 티비를 볼 때 옆집도 보고 그 옆집도 보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한국의 입시경쟁은 석차경쟁이다.


나도 보고 옆집도 보고, 그 옆집도 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로지 유의미한 것은 아무나 못 하는 기백만 원짜리 귀족과외일 뿐이다. 그것만이 석차를 올려주니까.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방송과외니 위성과외니 하는 모두를 위한 입시서비스를 자꾸 제공하면 국민은 헛된 희망을 품고 더욱 더 입시에 달려들어 그 결과 사교육비만 더 커지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누군가의 배를 불린다. 바로 방송사다. 방송과외로 인한 EBS의 폭리가 사회문제가 된 바 있다. 국민에겐 헛된 희망만 주면서 자신들은 실질적인 돈을 챙긴다. 이것이 한국 입시시장에서 벌어지는 ‘야바위’ 행각의 실체다.


주요 언론들은 한편으론 입시지옥의 폐해를 걱정하는 체하면서 끊임없이 그것을 부추긴다. 각종 명문대 관련 보도는 물론이고, 요즘엔 특목고 관련 보도를 경쟁적으로 내놓아 사교육비시장을 폭발시킨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입시교육보조 서비스가 학생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사탕발림을 살포한다. 물론 이때 정말로 성공하는 건 학생이 아니라 언론이다.


논술 문제가 터지자 언론들은 기민하게 논술 사교육 서비스를 개시했다. 한편으론 논술의 폐해를 개탄하는 척하면서 다른 쪽에선 거기에 포획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입시시장은 우리나라에선 노다지시장이다.


이렇게 언론들이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면서 각종 서비스들을 경쟁적으로 내놓을수록 아이들이 챙겨야 할 것은 많아지고, 내놔야 할 돈도 많아진다. 그리고 언론에 의해 부추겨지는 입시경쟁 분위기에 왠지 모든 아이들이 다 달려들어야 할 것 같아 실업계 학생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방방곡곡에 입시열풍이 불어 사교육시장은 나날이 노다지판이 된다. 언론의 두둑해지는 주머니와 함께.


MBC가 아마도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쇼바이벌을 폐지하고 그 후속으로 내놓은 것이 공부의제왕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컨셉은 EBS과외와 같다. 그러므로 국민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대신 방송사는 돈(광고수주)을 챙기는 구조도 같다. 또, 이런 프로그램으로 인해 입시경쟁과열 풍조가 더 고취되어 사교육비가 만연하게 되는 구조도 같다.


날로 황폐해져가는 음반시장에 신인 가수를 발굴해 기여하겠다는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날로 창궐하는 입시시장에 숟가락 하나 더 얹겠다고 달려든 형국이다. 시청률을 노려 광고로 돈을 벌겠다는 방송사의 영업행위를 모두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드라마 중에 갑자기 여주인공이 옷을 벗어제끼고 반신욕을 한다고 해도 봐줄 용의가 있다. 그래, 방송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이쯤 되면 막장 상업주의 아닌가? 입시과열이 공인된 망국병인 이때 별로 망할 걱정도 없는 MBC가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공부의제왕의 방송 장면을 소개한다. 아래 장면에선 이 프로그램이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명문대 뱃지를 보여주면서 더더욱 입시경쟁에 몰두하라고 채찍질하는 것인가?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 시험을 잘 볼 수 있습니다’라면서. 하지만 공교육이나 방송 등으로는 시험을 잘 보게 할 수 있을진 몰라도 결코 석차를 올려줄 수는 없다는 진실을 가린 채.


MBC가 입시지옥이라는 공포에 포획된 아이들과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노려 금품포획을 획책하고 있는 셈이다. 선데이서울보다 더 심한 상업주의 아닌가. 선데이서울은 정직하게 ‘우리는 상업적 소모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건 공익의 탈을 쓰고 오히려 공동체에 해를 끼치면서 돈을 챙기는 방송이다. 막장 상업주의라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


신고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