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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애니팡은 어떻게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최근에 박근혜 후보가 모바일 메신저 회사를 방문해 국민게임이라는 <애니팡>을 직접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날 박 후보는 많은 일정을 소화했었고 <애니팡>을 실제로 한 시간은 몇 분 정도밖에 안 됐을 것이다. <애니팡>은 실행 시간이 1분밖에 안 되기 때문에, 후보가 설사 5번을 연속해서 했어도 10분을 넘기지 못한다. 여러 일정 중의 아주 짧은 사건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날 포털에 뜬 기사의 제목엔 <애니팡>만 나왔다. 후보가 <애니팡>을 하며 젊은층 끌어안기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대선 후보가 표심을 얻기 위해 <애니팡>을 하고, 또 언론은 여러 가지 사건 중에서 <애니팡> 관련 사건만 제목으로 걸 정도로 <애니팡>은 현재 이슈의 중심에 있다. 박근혜 후보는 싸이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췄고, 요즘엔 <애니팡>을 했다. <강남스타일>은 거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데, 말춤에 이어 <애니팡>을 했다는 건 <애니팡> 역시 국민적 신드롬의 주인공이라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애니팡>의 성과는 어마어마하다. 이용자 수가 이미 2,000만 명을 넘었고, 하루 접속자 수가 1,000만 명, 순간 동시 접속자 수는 3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애니팡 화면을 보지 않고는 시내를 다니기 힘들다. 앞에서든 옆에서든 누군가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팡> 열풍의 특징은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젊은층이 많이 하긴 하지만, 그동안 게임과 매우 거리가 멀었던 중년 여성층을 비롯한 기성세대도 <애니팡>에 몰두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애니팡>의 어떤 요소가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것일까?

 

 

- 단순성의 마력 -

 

<애니팡>은 똑같은 블록 세 개 이상을 맞추면 그 줄이 터진다는 극히 단순한 게임이다. 바로 이런 단순성이 무섭다. 우리는 과거에 단순한 게임의 마력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바로 <테트리스>와 <헥사>의 열풍이다. <테트리스>는 등장하자마자 전국의 오락실을 접수했었다. 뒤이어 나온 <헥사>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애니팡>은 사실 <헥사>의 동물캐릭터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세상이 복잡하고 머리도 복잡할 때는 단순한 것에 몰입하는 게 속 편하다. 복잡한 게임은 그 사용법 익히는 것 자체도 스트레스다. 단순한 게임에 몰입하는 동안, 기분이 전환되고 긴장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자꾸 손이 가게 된다. 또 단순하기 때문에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다.

 

게다가 게임 시간이 1분이어서 부담도 되지 않는다. 과거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카트라이더>나 <포트리스>는 일단 피씨방에 가야 했고, 시간적으로도 한 시간 정도는 소모할 각오를 해야 했다. 게임 리그까지 탄생시켰던 <스타크래프트>의 경우엔 두 시간 정도는 각오해야 하고, <삼국지>는 최소한 일주일 정도는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 <문명>이나 <리니지>는 더 심해서 아예 인생이 망가질 각오까지 해야 한다. 그래서 네티즌은 <문명>에 손을 대는 순간 ‘운명’할 위험에 처한다며 ‘문명하셨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니며 잠깐잠깐씩 기분전환삼아 할 수 있는 <애니팡>은 정말 부담이 없다.

 

- 커뮤니케이션의 중독성 -

 

황폐하고 파편화된 세상이다. 전근대적인 공동체는 해체됐는데 시민공동체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개인이 되어 차가운 세상에 홀로 섰다. 과거엔 학교나 회사가 공동체의 기능을 했지만 이젠 그런 것도 사라졌다. 학부제가 시행된 후에 대학생은 모두 개인이 되었고, 외환위기 이후에 회사는 직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국가는 모든 개인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았다. 따라서, 한국인은 고독하다.

 

<애니팡>은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과거 오락실에선 동전을 넣어야 했는데, <애니팡>은 ‘하트’라고 불리는 아이템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하트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주고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대화가 시작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쾌감이 <테트리스>, <헥사> 열풍보다 <애니팡> 열풍을 더 키웠다. 과거 오락실에선 나 혼자 고독하게 오락기를 상대해야 했지만 이젠 모바일 인터넷 망을 타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다. 그 매개체가 바로 <애니팡>이다.

 

직장에선 <애니팡> 덕분에 소원했던 사람들 사이가 풀리고, 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애니팡> 얘기로 꽃을 피운다고 한다. 내 주위에도 <애니팡>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옛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했다는 이들이 있다. 과거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옛 친구들을 이어줘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이젠 그 자리에 <애니팡>이 있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도 인터넷을 통한 관계맺음에서 폭발했다. 만약 컴퓨터와 혼자 하는 게임이었다면 절대로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게이머와 게임리그까지 등장시킬 정도로 성공한 것을 보면,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커뮤니케이션을 열망하는지를 알 수 있다.

 

- 경쟁의 짜릿함 -

 

 

경쟁은 사람의 본성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별것 아닌 것도 경쟁이라는 요소가 들어가면 짜릿한 재미가 생긴다. 게다가 한국인은 21세기에 ‘경쟁괴물’로 조련됐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지 경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도록 세뇌당한 것이다. <애니팡>은 친구들 사이에 순위경쟁을 하도록 해서, 한국인의 경쟁강박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현실의 경쟁은 괴롭다. 한번 승자와 패자가 갈리면 영원히 그 차이를 좁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청년들은 ‘루저’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이른바 ‘루저녀’는 루저라는 말을 한번 잘못 했다가 네티즌의 공적이 되었다. 그럴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패배에 대한 공포를 안고 있는데, 그것은 패배할 경우 잃을 것이 너무나 많고 재도전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의 그림자다. 반면에 <애니팡>의 경쟁은 그렇지 않다. <애니팡>에선 순위가 일주일에 한 번씩 원점으로 돌아간다. 상시적으로 패자부활전이 열리는 셈이다. 이러면 경쟁의 쾌감을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다. 루저로 낙인찍힐 공포가 없는 경쟁. 현실에서도 딱 이런 정도의 경쟁이 좋겠다.

 

또, <애니팡>에선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기 점수를 자랑할 수 있다. 이것도 짜릿한 쾌감이다. <강남스타일>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자기 자랑의 멍석을 깔아줬다. 네티즌이 저마다 ‘자기 스타일’을 자랑할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여기에 세계인이 열광했다. 각국의 네티즌이 저마다 자랑한 ‘자기 스타일’ 영상의 유튜브 총조회수가 약 12억 회로 추산된다고 하니, 각자의 자랑을 나누는 ‘자기자랑놀이’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가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애니팡>은 단순성으로 부담 없는 즐거움을 주고, 관계 나눔과 경쟁의 장을 통해 짜릿한 재미를 줬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니팡> 자체의 유행은 곧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게임이든 이런 코드들을 잘 버무린다면 또다시 국민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