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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대선광고의 승자가 최후에 웃는다?

 대선에서 TV광고가 처음으로 강하게 부각된 것은 1997년 제15대 대선 때였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여론이 있었는데, ‘DJ와 함께 춤을’이라는 광고가 그런 우려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 광고는 경쾌한 뮤직비디오 형식이었다. 광고의 젊은 이미지는 그대로 김대중 후보에게 투사됐다.

 

 이 광고에서 강조된 메시지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당시는 외환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위기를 헤쳐나갈 능력 있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꼭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광고는 이런 호소로 끝을 맺었다. 이 메시지는 70년대부터 수많은 좌절을 겪은 그에게, ‘이제는 한번 기회를 줄 때가 됐다’는 인간적인 공감과 함께, 오랜 준비에 대한 믿음도 얻어낼 수 있었다. 이 광고는 한국정치에 본격적인 영상광고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된다.

 

 올해 가장 큰 반향을 얻어낸 드라마 중 하나가 ‘응답하라 1997’이다. 이 드라마는 요즘과 다름없는 1997년의 아이돌 문화를 그렸다. 그만큼 그때는 문화적으로 지금과 가까웠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김 후보 광고 제작진은 기민하게 반영했다. 김대중 후보를 클로즈업하는 방식부터가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앵글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반면에 제14대 대선이 치러진 1992년엔 80년대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과거의 광고들

 

 김영삼의 후보의 92년 광고는 마치 ‘대한늬우스’를 보는 듯했다. 색조부터가 흑백 기록필름을 연상시켰다. 이때의 비하면 97년 광고의 화려함은 시각적 충격이라 할 만하다. 사운드도 92년 광고는 마치 옛날 극장광고를 연상시켰다. 성우의 목소리에 에코 처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김영삼 후보의 광고는 ‘신한국 창조 김영삼, 개혁을 주도하는 민주자유당’을 내세웠다. 이것은 당시 새 시대인 90년대를 열어가려는 국민의 마음에 공감을 얻어냈다. 비록 영상적으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메시지만큼은 효과적인 광고였다. 또 이 광고에서 김영삼 후보는 새벽에 동네 주민들과 함께 조깅을 하는 소탈한 모습을 선보였는데, 이건 그 이전 권위주의 정권들과 차별화된 이미지였다.

 

 2002년 제16대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의 광고가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 노 후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상록수를 부르는 모습이 담긴 광고였다. 당시 노 후보는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민이 도와줬다며, 이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것은 새 정치를 염원하는 국민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켰다.

 

 2007년 제17대 대선 때, 더 이상 새 정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문제는 ‘밥’이었다. 양극화로 인해 서민이 체감하는 경제가 극도로 어려워진 것이다. 거시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서민의 주머니는 비어갔다. 이때 이명박 후보의 광고는 어느 시장통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국민성공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했다. 이것은 양극화로 고통 받던 서민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아, 이 사람은 서민경제를 살려주겠구나!’ 국민은 직선제가 시작된 이래 최대의 표차로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켰다.

 

 2002년에 이회창 후보의 광고는 그 이전 정권의 불안함을 부각시켰다. 네거티브를 한 것이다. 반면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후보는 미래의 꿈이나 대안을 내세웠다. 이회창 후보의 광고는 또, 그의 서민성도 내세우려 했는데 그게 별로 와 닿지 않았다. 2007년 정동영 후보의 광고는 네거티브 성격이 더 강했다.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공격한 것이다. 이것은 별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어느 후보가 승리할까

 

 TV광고의 의미가 커진 97년 이후 대선에서 기억되는 광고들은 모두 승자의 것들뿐이다. 김대중의 춤, 노무현의 눈물, 이명박의 국밥이다. 패자의 광고는 시청자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광고의 승자가 대선에서 이긴다는 말도 가능하다.

 

 올해 박근혜 후보의 첫 광고는 흉터를 내세웠는데 이것은 김대중의 춤 이상으로 충격적인 이미지였다. 시청자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건 확실한데, 문제는 이것이 부정적인 이미지라는 점이다. 문재인 후보의 첫 광고는 아주 애매했다. 서민성을 부각시킨 것 같지만, 마치 이회창 후보 광고의 서민성 부각처럼 와 닿지 않았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나, ‘사람이 먼저다’라는 양 후보의 슬로건도 애매하다. 지금은 2007년에 이어 여전히 ‘밥’이다. 경제문제를 책임질 지도자를 국민은 열망하고 있다. 이런 열망에 ‘여성’이나 ‘사람’이라는 키워드는 약하다는 느낌이다.

 

 올해는 춤, 눈물, 국밥 같은 강렬한 이미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박근혜 후보 측의 광고가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준비된 대통령은 김대중 후보, 첫 광고의 촛불 이미지는 노무현 후보, 그 다음 광고의 시장 아주머니는 이명박 후보, 이렇게 지난 3회의 선거에서 성공사례들을 적절히 참조해 광고들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일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첫째, 과거처럼 압도적인 광고가 없고, 둘째, 과거에 비해 인터넷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아직은 안개속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