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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진짜사나이에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나라

 

요즘 일요일엔 <진짜 사나이>와 <아빠 어디가>를 최우선적으로 보게 된다. <아빠 어디가>의 경우엔 아이들의 순수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인데, <진짜 사나이>에 나오는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않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군대라는 극단적인 환경이 사람을 아이처럼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멀쩡하던 사회인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퇴행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군대엔 사람을 퇴행시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이 복잡한 세파에 시달리던 시청자에게 위안을 준다.

 

퇴행은 단순성과 함께 바보스러움으로도 나타난다. 원래 사람들은 예능에서 바보 캐릭터를 좋아해왔다. <무한도전>, <1박2일>을 비롯해 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은 평균이하 지능과 지식으로 사랑받는다. 가끔 너무 억지스럽게 바보 캐릭터를 가장한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로 연예인들은 바보처럼 보이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런 가운데에 ‘어리버리’ 캐릭터 진실성 논란도 터졌었고, ‘퀴즈정답 일부러 못 맞추기’, ‘일부러 영어 모르는 척하기’ 등이 때로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시청자는 억지 바보스러움보다 진짜 바보스러움을 원하기 때문에, 억지로 과장한다는 게 들키면 역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군대는 바보 캐릭터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바보스러움을 가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 군복을 입고 모자에 ‘작대기’ 하나를 다는 순간 모두의 지능이 일제히 하향평준화 되어 보인다.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는 일반사회와는 전혀 다른 언행방식과 지식체계를 요구하기 때문에, 갑자기 그곳에 떨어진 사람은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다 큰 어른이 말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진짜 사나이> 출연자들은 <아빠 어디가>의 아이들과 근본적으로 비슷한 속성을 갖게 된다.

 

또, 시청자들은 ‘찌질함’을 좋아한다. 그런데 군대야말로 찌질함, 궁상맞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주엔 포병훈련을 하던 멤버들이 추레한 몰골로 길바닥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 모습이 나왔는데, 요즘 시청자들은 이런 찌질함을 대단히 사랑한다.

 

또, 군대에선 남자들의 진한 우애와 인간미도 느낄 수 있다. 이것도 요즘 시청자들이 대단히 사랑하는 코드다. <무한도전>, <1박2일> 등이 그런 이유로 사랑받았는데, 군대는 이른바 ‘전우애’를 통해 우애의 극치를 보여준다. 군대는 부모나 스펙 등을 따지지 않고 일단 군복을 입는 순간 모두가 한 가족이 되는 특수 집단이다. 요즘 사회에선 스펙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무한경쟁을 시키는 살벌한 분위기이기 때문에, 군대의 집단성에서 깊은 인간미와 위안을 느끼게 된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진짜 사나이>를 비롯한 군대코드가 뜨고 있다. 특히 <진짜 사나이>에 찬사가 집중되는데,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이 있다. 재밌으니까 찬사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 불편하다는 반응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우리 사회가 정상이었다면 불편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을 것이다.

 

 

미르가 훈련 중에 몸을 제대로 못 펼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서경석이 손을 다친 장면이 방영된 날이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당연히 가학성 논란이 터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이슈가 된 것은 서경석 항명 사건의 리얼리티 논란뿐이었다. 사람들은 출연자들이 정말 진짜로 생고생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정말로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는가에만 관심이 있었다.

 

군대의 절대적 상명하복 분위기나 집단성도 시민사회에선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을 중시하는 시민적 감수성과 군대의 집단성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그런 집단성을 보며 따뜻함, 편안함만을 느끼는 분위기이고, 시민이 집단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단순한 코믹코드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대학에서마저 군대코드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후배가 선배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든지, 군대식 엠티를 가는 식이다. 얼마 전엔 한 지방 국립대에서 전체 104개 학과 중에 77개 학과의 엠티에서 군대식 문화가 나타난다고 보도된 적도 있다. 일부 학과에선 선배가 군대 조교차림으로 나타나 얼차려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멀쩡한 시민 사이에서 명령을 하는 자와 받는 자가 나뉘어지고, 얼차려를 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이 40이 된 연예인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런 광경이 물론 재미는 있지만, 일각에선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와야 정상사회다. 그런데 그런 지적은 없고 모두가 그 극단적인 리얼리티와 생고생만을 즐겁게 감상하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가 이상해졌다는 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