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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왜 남자친구는 괴물이 될까

 

한동안 드라마 부문에선 월화 미니시리즈 경쟁이 가장 뜨거웠는데, ‘직장의 신’이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등의 화제작을 물리치고 월화 드라마 대전의 승자가 된 작품은 바로 ‘구가의 서’다. 이 작품은 구미호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 이승기와 인간 여인인 수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이승기는 주술의 힘이 담긴 팔찌를 차고 인간으로 컸지만, 팔찌를 벗는 순간 괴물로 변하면서 괴력을 발휘한다. 검객 십수 명을 순식간에 해치울 정도의 괴력인데, 이승기는 그 괴력으로 여주인공 수지를 지켜준다. 모두를 두렵게 할 정도로 으르렁 대던 괴물은 수지의 손길이 닿는 순간 온순한 인간으로 돌아온다. 또, 괴물의 피에는 놀라운 회생력이 있어 수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그 피로 생명을 지켜주기도 한다.

 

이 괴물 이승기에 요즘 여성 시청자의 열광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여성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이승기의 캐릭터는 ‘더킹 투하츠’의 국왕이었다. ‘구가의 서’에서 괴물이 그 국왕의 인기를 넘어섰다. 최근에 이승기가 수지를 뒤에서 껴안자(백허그) 열광은 극에 달했다. 요즘 화제가 되는 토크쇼인 ‘썰전’에선 평소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던 박지윤이, ‘구가의 서’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흥분하면서 열변을 토해 남자 출연자들의 핀잔을 받기도 했다. 무엇이 이렇게 여자들을 들뜨게 하는 걸까?

◆괴물 남자친구에 열광하는 여자들

 

괴물의 인기는 ‘구가의 서’에서만이 아니다. 여성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트와이라잇’ 시리즈에선 남자친구가 뱀파이어였다.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인데 밤에만 활동하는 드라큘라와는 달리, 낮에도 활동하고 직접 사람을 물어 피를 마시지 않아도 되는 뱀파이어였다. 하지만 힘은 초인적이어서 여주인공에게 자동차가 덮쳐올 때 한 팔로 막아냈다. 또 여주인공을 물어서 영생(뱀파이어)의 몸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5월 이후 한국영화가 약세로 돌아섰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외국영화는 맥을 못 췄었다. 당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잠시나마 1위까지 했던 외화가 바로 ‘웜 바디스’였는데, 이 영화에선 남자친구가 좀비였다. 여자가 좀비들 사이에서 위험에 처하자 남자 좀비가 여자를 구해주면서 사랑에 빠진다. 그 후에도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남자가 음식과 쉴 곳을 책임진다. 남자는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완전히 잃은 괴물 좀비였지만 여자를 만난 이후 점점 인간성을 되찾게 된다. 마지막엔 자기 몸을 던져 여자의 생명을 구해준 후 진짜 인간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는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라는 카피와 함께 꽃을 들고 있는 남자 좀비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그 포스터를 보더니 여자들이 극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극장으로 몰려간 사례는 또 있다. 영화 ‘늑대소년’에서 송중기가 괴물 남자친구로 나오자 7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몰리면서 한국 멜로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그 전 기록이 ‘건축학개론’의 400만 명에 불과했으니, 괴물 남자친구에게 여자들이 얼마나 열광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는 여자 관객이 속출했는데, 남자들은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울어야 하는 거지?’라며 어리둥절해 했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트렌드를 기민하게 반영하는 아이돌 업계에서도 괴물 코드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샤이니와 포미닛은 좀비, 엑소는 늑대, 이런 식이다. ‘구가의 서’가 김혜수와 김태희를 모두 물리치는 괴력을 발휘함에 따라 앞으로도 괴물 남자친구의 전성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왜 괴물인가

 

괴물은 괴물인데 일단 잘 생기고 봐야 한다. 헐크나 골룸같은 외모는 곤란하다. 괴물인 와중에 송중기 같은 꽃미남이어야 한다. 이승기는 괴물이 될 때 눈동자 색깔만 변하기 때문에 이국적인 매력을 풍기기까지 한다. 뱀파이어나 좀비는 핏기가 없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하얀 피부를 자랑할 수 있다.

 

괴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괴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괴력을 여자 지키는 데 써야 한다. 모든 괴물 남자친구 영화에서 괴물은 여주인공의 생명을 구해주며 여자를 괴롭히는 나쁜 남자를 혼내준다. ‘늑대소년’에서도 송중기가 자기 몸을 던져 박보영을 구했다.

 

또, 남들한텐 무서운 괴물이어도 여주인공에게만은 순한 양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순정남이어야 한다. 심장도 여주인공 앞에서만 뛰어야 한다. 괴물의 기나긴 수명은 영원한 사랑을 드러내주는 장치가 된다. ‘늑대소년’에서 괴물 송중기는 박보영이 ‘기다려’하면 기다리는 순한 양이며, 그녀가 늙은 후에도 그녀를 기다리는 사랑의 불사신이었다.

 

종합하면 잘 생기고 힘 좋은 순정남이라는 얘긴데, 결국 현실에선 ‘몸짱 꽃미남 순정 부자’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곧 힘이니까. 여성을 완전히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완전남. 이런 극단적 이상형이 괴물로 나타난 셈이다. 여성들이 이런 괴물을 염원할수록 괴물이 되지 못하는 88만원 세대 남성들의 원망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