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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은밀하게 위대하게’ 열풍의 씁쓸한 그림자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역대 최단시간 100만 관객 돌파, 한국영화사상 개봉 첫날 최다관객, 한국영화 일일 최다관객 기록 경신 등 마치 <강남스타일>처럼 기록의 행진을 이어가는 무서운 기세다.

 

기본적으로는 반가운 일이다. 얼마 전까지 황금기를 열어가는 것 같던 한국영화는 5월에 <전국노래자랑>, <고령화가족>, <미나문방구>, <몽타주> 등이 나왔지만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 <아이언맨3>의 싹쓸이 때문이다. 한국의 소품이 헐리우드 대형 오락영화와 경쟁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다시 드러났다. 6월에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습이 계속될 예정이어서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놀랍게도 <은밀하게 위대하게> 열풍이 터졌다.

 

한국영화의 흥행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기는 한데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과거 <도둑들>이 900개에 육박하는 스크린에서 개봉했을 때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있었다. 이 영화는 최대 스크린 수가 1091개에 달했다. 보도에 따르면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도둑들>을 뛰어넘는 937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지금은 1194개까지 그 수를 늘인 것으로 보인다.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해 최근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영화는 <광해, 왕이 된 남자>였는데, 이 영화의 경우 최대 스크린 수는 1001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개봉 당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스크린 수는 688~810개였다.(정확한 수는 매체마다 다르게 발표됨) 어쨌든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크린 수가 <도둑들>이나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얘기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계기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뜨겁게 일어났었고, 웬만한 사람은 ‘퐁당퐁당’이라는 영화계 은어를 다 알게 됐을 정도로 이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도둑들>이나 <광해, 왕이 된 남자>보다 독과점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은밀하게 위대하게>같은 한국 상업영화나 몇몇 헐리우드 대작들의 스크린 독과점 때문에 그렇지 못한 영화들은 조기종영이나 퐁당퐁당 상영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 영화의 다양성을 해칠 것이다.

 

최근에 칸영화제에선 아시아영화의 약진이 돋보인다는 평이 나왔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한국 장편영화는 없었다. 중국, 일본, 캄보디아 등의 영화들만 있었을 뿐이다. 이를 두고 한국 영화가 너무 상업성 위주로 가면서 다양성이라든가 개성적인 작가 영화를 만드는 힘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었다. 스크린 독과점은 바로 이런 문제를 만든다.

 

물론 <은밀하게 위대하게> 흥행 열풍이 꼭 스크린 독과점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언맨3>의 경우 1300여 스크린에서 개봉했는데,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그보다 못한 스크린 개수로 그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으니 이 영화의 흥행을 스크린 독과점 덕이라고만 폄하할 이유는 없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때도 천만 돌파의 원인이 영화 자체의 힘이냐 스크린 독과점이냐 논란이 있었는데, 중요한 건 특정 영화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봤을 때 ‘상업적 가능성이 보이는 몇몇 영화가 극장 전체를 독식하는 관행’이 너무나 당연하게 재생산되는 현실이 문제라는 얘기다. 이러면 영화 산업이 ‘모 아니면 도’식의 한탕주의 도박으로 흘러가고, 망하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될 만한 영화를 만드는 사이에 한국영화의 다양한 저력이 사라지며, 그러다 어느 순간 ‘훅’ 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