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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상상플러스의 설레발 영어울렁증 키운다

 

상상플러스의 설레발 영어울렁증 키운다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상상플러스가 시즌 2로 변신하면서 영어공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를 영어로 개사해 부르는 일명 '풍덩! 칠드런 송' 코너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상플러스 측은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영어 울렁증을 갖고 있다 ...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동요를 영어로 부르면 재미있을 것이다'고 생각했고 이런 방법이 영어와 쉽게 친해지는 방법임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알게 됐다"고 했다 한다.


MBC 공부의제왕이 KBS 버전으로 부활한 것일까? 입시울렁증을 예능에서 고쳐주겠다고 하더니 이젠 영어울렁증을 고쳐주겠단다. 같은 말을 하도 여러 번 말해서 나도 괴롭다. 하지만 방송사가 계속해서 때만 되면 같은 사고를 치니, 나도 역시 같은 말을 때만 되면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


반복할 말은 이거다.


방송사가 나서서 이렇게 ‘설레발’을 떨면 울렁증만 더 도질 뿐이다.


생각해보라. 한국인이 도대체 왜 영어울렁증을 갖게 됐을까? 스리랑카 말을 못해서 창피해하는 분 계신가? 혹시 우즈베키스탄 말을 못해서 부끄러워하는 분 계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영어울렁증만 있을까?


온 국민이 영어를 해야 한다고 강요받기 때문이다. 식민지적 압제가 없는 한 수천만 명이 특정 언어에 통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영어가 필요해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의 국민에게 영어는 일상생활과 상관없는 특수기술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어찌된 일인지 전 국민으로 하여금 영어를 못 하면 큰일이라도 당할 듯한 불안감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전 국민이 영어강박증에 빠진다. 교육방송도 아니고 일반 공중파 예능 오락프로그램까지 나서서 전 국민에게 영어의 필요성을 선전하면 이 기괴한 영어강박증만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영어의 지위를 제2의 국어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한국인의 문제는 영어강박증을 넘어 상상플러스 측도 말했듯이 영어울렁증에까지 이르렀다. 영어강박증은 어떻게 영어울렁증으로 발전하는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느 날 이런 포고령이 내렸다고 치자. ‘전 국민은 스리랑카어를 배워야 한다’ 이러면 최소한 스리랑카어 강박증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리랑카 사람을 만났을 때 쩔쩔 매며 ‘스리랑카어 울렁증’ 증상을 보일까? 그렇진 않다.


유독 영어에서만 울렁증이 생기는 이유는 영어가 단지 외국어 기술이 아니라 인간등급기제, 능력의 표지, 공부의 상징, 지능의 표식처럼 폭주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영어 시험점수가 이런 역할을 했지만 이젠 발음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인수위도 ‘어린지’라며 국민의 발음 울렁증을 부추겼다. 불행히도 한국인은 대체로 영어발음을 잘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울렁증은 필연이다.


영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일종의 특수한 기술에 불과하다. 특정 기술로 인간 지능, 인간 능력을 재려는 사회는 제정신이 아닌 사회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그래서 억지로 이런 구조를 조장해야 한다.


학교교육, 입시정책에서 영어를 특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장치다. 외국어고의 창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인수위같은 국가기구가 나서서 바람을 잡는다. 영어 못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그 분위기를 이어받아 각종 기업, 기관들이 아무 이유 없이 영어 시험을 강화한다. 그다음 방송사까지 나서서 국민들에게 ‘영어’ 바람을 불어넣으면 제정신이 아닌 사회가 완성된다.


필연적으로 수천만 명의 국민이 영어를 잘 할 수는 없으므로, 이런 제정신이 아닌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수천만 명의 국민들이 영어강박증에 시달리며 영어에 주눅 들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수천만 명의 국민들이 영어울렁증이란 신종 정신병에 걸린다.


상상플러스는 우리말 교양 프로그램으로 널리 사랑 받았었다. 나도 요즘엔 상상플러스를 매주 봐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슬그머니 연예인 토크쇼와 게임프로그램으로 변했다. 여기까지도 잘 봤다. 하지만 영어는 아니다.


상상플러스 측은 “그간 ‘상상플러스’가 우리말로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상상플러스’는 우리말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말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었다”라고 했다 한다.


우리말 프로그램이건 우리말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건, 바로 그것이 상상플러스였다. 여태까지 바른 우리말 쓰기하면서 벌칙까지 주던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풍덩! 칠드런 송'이란 이름이 웬말인가?


‘아이 영어사교육으로 풍덩!’이란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백보 양보해서 공중파 예능이 이런 ‘괴상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상상플러스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건 원래의 상상플러스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이다.


우리말을 잘 알고 씀으로서 자부심을 가진 국민을 만들던 프로그램이 영어강박증 조장, 영어울렁증자 양산 프로그램으로 전락하는 건 처량하다. 영어교육은 영어공부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보는 교육방송이 하면 된다. 온 국민에게 사실상 강제되는 공중파 예능에서 영어라니, 이젠 영어몰입예능의 시대인가?


'풍덩! 칠드런 송'을 취소하든지, 정 영어를 하려거든 최소한 상상플러스 간판만이라도 내려달라. 그것이 상상플러스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