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사회성과 ‘달달한’ 멜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이었다. 그 작품을 쓴 박혜련 작가가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엔 수목드라마 <피노키오>다. 이 작품도 사회성과 달달한 멜로 라인을 모두 잡고 쾌속 출항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팀의 작품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정웅인이 잠깐 출연해 ‘죽일거다’를 시연해주기도 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나왔던 이종석도 연이어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다. <상속자들>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박신혜도 합류했다. 그야말로 실패를 모르는 드림팀의 조합인 셈인데, 이번에도 대박을 터뜨릴 기세다.
이종석은 이번에도 여심을 달뜨게 하는 매력적인 보호자 역할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사람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있었다면, 이번엔 초능력에 가까운 지력의 소유자로 나온다. 도서관 장서의 내용을 다 외우고, 다른 수험생이 3년 공부한 내용을 일주일만에 따라잡는다는 설정이니 이 정도면 초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는 재벌 2세 실장님 캐릭터의 유사품이다. 재벌 2세가 가진 재력도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초능력인 셈인데, 초능력 남자친구는 그 초능력적 재력을 더 노골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다. 여자들이 ‘능력남’ 판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캐릭터가 계속 나온다.
박신혜는 순수하고 착한 여자 캐릭터로, 이는 남자들의 ‘순수녀’ 판타지에 부합한다. 이렇게 보면 너무나 도식적인, 닳고 닳은 캐릭터의 조합으로 멜로라인이 이루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에 재벌 2세 백기사 캐릭터까지 등장하니 나올 건 다 나온다고 할 수 있겠다.
단지 여기까지라면 뻔한 멜로드라마가 또 하나 나왔다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박혜련 작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그랬듯이 통속적인 멜로 설정에 묵직한 사회적 화두를 담아내는 놀라운 솜씨를 선보이고 있다.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는 피노키오 증후군. 현실엔 없는 가상의 증상이다. <피노키오>는 이 가상의 증상을 내세워 거짓말에 대한 일종의 우화처럼 전개된다. 그러다 기자라는 직종이 끼어들면서 우화는 현실에 육박한다. 피노키오 증후군 여주인공이 기자를 지망하면서, 기자와 거짓말이라는 언론보도의 윤리성 문제가 정면으로 제기된 것이다.
마침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언론 신뢰성이 땅에 떨어진 분위기다. 박혜련 작가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선 흉악범죄에 대한 분노라는 시대정신을 잡아냈다면, 이번엔 언론불신이라는 시대정신을 길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닳고 닳은 멜로드라마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더 나아가 불확실한 정보에 휘둘리며 증오를 배설하는 군중의 문제, 그리고 복수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가 등 묵직한 화두를 연이어 다루며 방영 초반 예기치 않았던 문제작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명작 탄생을 목도하는 것일까? 초반의 짜임새가 후반까지 잘 유지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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