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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라인업은 왜 망했을까

 

라인업은 왜 망했을까


 <이경규 - 김용만의 라인업>이 비운의 최후를 맞았다. <무한도전>에 치어 이렇다 할 시청률을 올리지 못하고 방황하다 결국 막을 내린 것이다. SBS는 <작렬 정신통일>, <슈퍼 바이킹>에 이어 <라인업> 조기종영까지 예능 찬바람을 계속해서 맞고 있다. <라인업>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왜 시청률이 오르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난 최근에 <무한도전>보다 <라인업>을 우선적으로 봤었다. <라인업>은 폭발적인 웃음은 없지만 은근히 재밌고 정이 가는 방송이었다. 그건 내가 마이너한테 더 관심이 가는 삐딱이 기질의 소유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무한도전>을 오래 보다 똑 같은 캐릭터에 질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확실히 <라인업>엔 정이 가는 요소가 있었다.


‘라인’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을 전제로 한 말이다. 그 라인이 권력과 하수인 사이의 라인, 자본과 대리인 사이의 라인이라면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라인업>의 라인은 그냥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같은 느낌을 줬다. 생계형 예능인이라는 말을 회자시킨 김경민, 윤정수, 이윤석 등과 이경규, 김용만의 인간적인 관계는 배타적인 느낌보단 프로그램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용을 했다.


 거기에 <무한도전>에 언제나 밀리는 위상이 마치 외인구단같은 이미지를 낳았다. 그들끼리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장난치고 서로 싸우고 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나름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냉정했다. 시청자의 첫 번째 선택은 <무한도전>이었다. <라인업>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 그룹은 맥을 추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라인업>은 시청률을 올리진 못했지만 관심을 끄는 덴 성공했다. 시청률 대비 관심률로는 <라인업>이 최고였을 것이다. 보도교양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한 자리 수 시청률의 프로그램 중에 <라인업>만큼 많이 화제에 올랐던 프로그램도 없다. 보통 비인기 프로그램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데 반해 <라인업>은 종영 자체도 화제가 됐다. 심지어 종영 특집이 방송되기까지 했다. 종영 특집에선 <라인업>답지 않게 눈물과 우애의 모습이 연출됐다. 평소 상호비방으로 일관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이 많은 관심과 낮은 시청률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예능프로그램을 보자. 지금 예능의 지존은 <무한도전>, <1박2일>, <해피투게더 시즌3>이다. 이중 <1박2일>이 출발할 당시 <라인업>과 그 성격이 비슷했다. 둘 다 <무한도전>의 ‘짝퉁’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무한도전>은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일종의 캐릭터 가상극이다. 출연자들이 캐릭터를 설정해 실제처럼 행동한다. 물론 그것이 꼭 가상인 것만은 아니다. 인물의 실제 성격과 인물들간의 실제 관계가 반영된다. 그 반영률이 높을수록 시청자들의 몰입이 빨라진다.


 일단 캐릭터가 구축되면 제작진이 정한 어떤 상황에 그 캐릭터들이 들어가 그 상황을 헤쳐 나간다. 조건과 캐릭터만 있고 구체적인 대본이 없기 때문에 ‘리얼’이다. 또 기존 예능에서 인물들이 서로 예의를 차리고 바른말 고운말을 하며 상대의 개그를 적절한 선에서 받아줬다면 ‘리얼’의 세계는 가차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비난이 쏟아지고 빈틈을 보이면 공격당한다.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막말과 때론 폭력까지도 불사한다.


 캐릭터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는 예능이되 드라마에 가까운 속성이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캐릭터를 구축한 다음 상황을 바꿔가며 그 캐릭터들의 성격을 반복해 인기를 얻은 것처럼, 리얼 버라이어티도 일단 구축된 캐릭터가 자기동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시청자는 캐릭터에 몰입해 누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또 누구와 누가 대립하는지, 누구와 누가 제휴하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무한도전>은 다른 멤버 흉내내기를 통해 형성된 캐릭터를 전복하면서 짜릿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유재석이 박명수의 행동방식을 그대로 따라했던 것이다. 유재석의 입에서 ‘닥쳐! 죽고 싶냐?’가 나오자 시청자는 열광했다.


 <라인업>과 <1박2일>은 똑같이 <무한도전>을 복제해 승부수를 던졌다. <1박2일>은 대박을 쳤고 <라인업>은 망했다. <라인업>은 <무한도전>에 나오는 무한 이기심, 막말, 상호비방, 내부대립을 전면에 내세웠다. <1박2일>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1박2일>엔 <라인업>에 없는 것이 더 있었다. 바로 멤버 사이의 '정'과 인간적인 고생이다. <무한도전>도 서로 싸우기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멤버 사이에 끈끈한 정이 있다. <라인업>은 나같은 마이너적인 사람에겐 왠지 모르게 정을 느끼게 했으나 그것을 보편화하진 못했다. 시청자들에게 보인 모습은 오로지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뿐이었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은 확실하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통인 배고픔과 힘듦, 그 둘을 합쳐서 힘든 와중에 배고픈 모습을 보여준다. <라인업>은 그에 비하면 웰빙 비방쇼였다. 이렇게 되면 감정이입이 힘들어진다. <라인업>이 취한 ‘독한’ 전략은 관심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다. 센 방송, 독한 방송, 비난-막말-막장 버라이어티로 언론과 누리꾼의 관심을 받았다. 시청률과 상관없는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무한도전>과 <1박2일>의 ‘땀’을 누를 순 없었다. 감동을 주지 못한 것이다. 입과 머리는 있으되 심장이 없었다.


 안티전략, 비주류전략, 마이너포지션으론 절대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안티당, 반대당은 집권하지 못한다. 평생 견제나 하며 야당으로 살 뿐이다. 안티도 보통 안티가 아니라 독한 안티는 마이너 신세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는 ‘선진조국 만들겠습니다. 경제 살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다른 세력은 ‘이명박은 나쁜 사람입니다.’라고 안티 행각을 벌였다. 결과는 비운의 참패, <라인업> 신세가 됐다.


 또, <무한도전>과 <1박2일>엔 성취감이란 코드가 있다. 멤버들이 몇 개월에 걸쳐 고생고생하며 연습해 실제 댄스스포츠 대회에 참가한 이벤트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멤버들도 눈물을 쏟았고 시청자도 감동을 받았다. <무한도전>이 아무리 서로 욕하고 경쟁한다 해도 이런 진실한 감동과 혼연일체의 정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라인업>은 저변에 깔려있는 바탕을 놓고 겉으로 튀어나온 독설코드만 가져갔다. 반면에 <1박2일>은 순박한 진심 코드를 더 많이 가져갔다.


 그래도 생계형 예능이라는 코드가 나와서 그런지 나는 <라인업>에 정이 갔었다. <무한도전>이 이미 성공한 트렌디하고 세련된 리얼이라면, <라인업>은 투박하고 끈끈한 리얼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을 긍정적인 따스함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경쟁비방으로만 일관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편안하게 앉아 말로만 서로 비방하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라디오스타>다. <라디오스타>는 <무릎팍도사>와 함께 방영된다. <무릎팍도사>는 몸과 심장으로 육박하는 토크쇼다. 입과 머리로 하는 <라디오스타>는 스스로 <무릎팍도사>에 대한 비주류를 자처하면서 살아남는다. 그러나 <라인업>은 <무한도전> 부록이 될 수 없었다. 경쟁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이너의 네거티브전략이 아니라 당당히 주류가 될 수 있는 포지티브, 즉 진심과 땀, 감동을 보여줬어야 했다. 한국인은 따스함과 진심에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라인업>이 기름유출사고지역에 갔을 때 호응이 있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조작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빛을 잃었다. 그 유언비어 유포자는 중학교 2학년생으로 밝혀졌다. 이때가 <라인업>의 전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안타까운 대목이다. <라인업>이 그립다. 주말이 2% 허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