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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이영자가 사는 길

 

이영자가 사는 길


 이영자는 비호감으로 찍혔다. 한때는 한국 최고의 MC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분수령이 된 일은 다이어트 비디오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짓말을 싫어한다. 다이어트 비디오 사건으로 이영자의 이미지는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적 일인가? 수많은 연예인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심지어 실정법을 위반하고도 멀쩡히 돌아와 방송활동을 잘 하고 있다. 어떤 연예인은 경찰서 다녀온 걸 예능 소재로 삼기까지 한다. 물론 이영자는 거짓말 사건이 한번 더 있었다.


 모처럼 공중파로 복귀한 이영자는 또다시 거짓말 파문에 휩싸인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해 다이아몬드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거짓말로 밝혀진 것이다. 이 사건(?)은 2007년을 장식한 대표적인 거짓말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2007년을 장식한 대표적 거짓말의 하나인 슈퍼주니어 이특의 ‘김연아 싸이월드 1촌 거부’ 발언은 이후 이특의 활동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않고 있다. 두 프로그램 다 방송위로부터 징계를 받았지만 대중은 다르게 반응한 것이다.


 2007년을 장식한 최고(?)의 거짓말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학력위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나라를 발칵 뒤집었었다. 하지만 관련 연예인들 중 일부는 지금 승승장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별달리 문제 삼는 사람도 없다.


 유독 이영자만 당하고 있다. 비호감으로 찍혔기 때문이다. 유승준의 거짓말은 국가기강과 관련이 있는 것임에 비해 이영자가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거짓말은 극히 경미하고 연예인에게 일상적인 과장된 꾸미기 수준이었다. 그 정도의 꾸미기는 다른 연예인도 수시로 하고 있고 들통 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소라에게 피해를 줬기 때문에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예능에서 연예인들의 과장된 이야기는 일상사다. 왜 이영자만 수렁에 빠져야 할까?


-하찮은 이영자가 되라-


 이영자는 너무 강하다. ‘기’로 봤을 때 이영자는 강호동보다 더 기가 센 것으로 화면상에 비춰진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이영자는 스튜디오를 완전히 장악했었다. 누가 감히 이영자의 ‘말빨’을 당하겠는가. 이영자가 출연한 예능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 어떤 MC도 이영자 앞에선 고개를 숙인다. 그걸 보고 누구나 생각한다.


 ‘야 이영자가 정말 대단하긴 하구나. 확실히 재능은 있구나.’


 그런데 거기서 끝이다. 호감이 안 생긴다. 한국인은 나대는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 예능은 집단MC 체제다. 아무리 국민MC라고 해도 혼자서 폭주하지 못한다. 이영자는 폭주기관차다. 이족 골라인에서 반대편까지 단독 드리블로 치고 들어가 득점까지 한다. 현란하고 압도당하긴 하는데 요즘의 한국인 취향은 아니다. 너무 강하니까 어쩌다 잘못을 하면 대중이 격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약한 존재라면 적당한 잘못은 대중이 그냥 넘어가준다.


 박명수의 별명은 ‘하찮은형’이다. 박명수가 이영자보다 ‘말빨’이 약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대중은 이영자보다 박명수를 더 좋아한다. 박명수가 <무한도전>을 완전히 장악해 원맨쇼를 했다면 지금 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박명수의 호통이 웃긴 것은 박명수가 아무리 호통을 쳐도 주위에서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목소리 자체도 타고 났다. 다른 사람이 호통 치면 무섭고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박명수는 호통을 쳐도 목소리가 연약해 아무런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약한 목청이 가수로는 불행한 일이나 ‘호통자’로는 천운이었다.


 이영자는 강하게 느껴진다. 목소리의 크기, 몸의 크기, 말의 양에서 다른 이들을 압도한다. 이영자의 전성기 시절엔 강한 이영자가 출연자들을 마음껏 가지고 노는 설정이 먹혔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유재석 코드의 전성기다. 집단 출연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MC가 성공한다. 이때 자신의 위상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유재석은 동네북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면박당하며 아성을 쌓았다.


 ‘쿵쿵따’에서 유재석은 가장 만만한 약자였다. <엑스맨>에서도 좌중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보다는 다른 출연자들의 도우미격인 성격이 더 강했다. <무한도전>에서도 박명수에게 항상 치이는 처지다. 한때 유재석이 박명수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흉내 내어 열광적인 반응을 받은 적이 있다.


 약자인 유재석이 강한 캐릭터를 표현한 의외성이 그 호응의 원인이었다. 그 의외성은 일회성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 이벤트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아예 유재석의 이미지 자체가 그후 계속해서 건방지고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면 호응은 곧바로 짜증으로 변했을 것이다.


 강호동은 그 존재 자체가 선천적으로 강하다. 박명수와는 정반대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아무도 그를 하찮게 생각하지 않는다. 박명수는 그에게 존댓말을 계속 쓰게 되는 비애를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강호동은 자신의 강함을 효과적으로 지운다. <1박2일>에서 강호동은 고생을 자처한다. 스스로 ‘하찮은형’이 되는 것이다. 강호동이 MC로서 성공가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던 MBC <천생연분>에서 그는 강함과 만만함을 동시에 구현했었다.


 강호동은 어차피 천하장사 출신이기 때문에 강한 이미지를 완전히 지울 순 없다. <천생연분>에서 그는 때때로 힘을 행사했다. 출연자들이 계속 소란을 피우면 짜증이 폭발한 강호동이 힘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만만함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강호동의 강함이 비호감을 동반하는 우악스러움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강호동을 만만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신정환, 윤정수였다. 특히 신정환은 강호동에게 지속적으로 도발하며 강호동을 하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강호동은 ‘힘은 세나 만만한 덩치’라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영자에겐 오직 강함만 느껴진다. 이영자의 카리스마를 감당할 사람이 없다. 무한히 호감 가는 사람이 무한히 호감 가는 말만 해도 계속해서 쏘아대기만 하면 짜증이 날 거다. 하물며 이영자는 호감 캐릭터도 아니다. 최근 대중의 뇌리 속에 이영자는 매우 부정적인 기억을 남겼다. 그런 상태에서 강한 캐릭터로 일관하면 보는 사람이 부담스럽다.


 신정환은 추문에 휘말린 것에 비해 활동재개가 빨랐기 때문에 대중이 거부할 수 있었으나 화를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신정환은 어딜 가나 당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만약 신정환이 엄청난 달변으로 좌중을 주도했다면 즉각 공격당하고 물밑에 잠겼을 것이다. 얼굴 때문에 타박당하고, 빈약한 몸 때문에 타박당하고, 말 시키면 더듬대는 부실함이 신정환의 활동재개를 도왔다.


 이영자는 돌아오자마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 와중에 또다시 안 좋은 사건이 터졌으니 미운 털이 박힐 수밖에 없었다. 미운 털이 박혔기 때문에 안 좋은 사건의 기억이 대중의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최근 <해피투게더>에서 이영자가 김영철에게 당하는 설정이 괜찮았다. 이영자는 그렇게 박명수처럼 남에게 쏘아대다가도 곧 당하고 마는 하찮음을 보여야 한다. 하찮아지는 것이 이영자가 사는 길이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사건을 과장해 말하는 버릇은 남들도 다 가진 것이나 이영자는 미운 털이 박혔으니만큼 남들보다 좀 더 주의해 과장폭을 줄여 말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