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가 처음부터 야했던 건 아니었다. 28살인 1979년에 홍익대 조교수로 임용되고 우리나라 윤동주 박사 1호가 됐을 때만 해도 탄탄대로의 일반적인 학자 같았다. 1989년에 가자 장미여관으로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잇따라 내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1992즐거운 사라에 이르러선 단순한 여론의 공격을 넘어서서, 강의 도중에 학생들 앞에서 연행 구속되기에 이른다. 음란문서 유포 혐의였다.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가 구속된 세계 최초의 사례라는 말이 나왔다. 심지어 출판사 대표까지 함께 구속됐을 정도로 우리사회는 그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3년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95년 유죄가 확정되면서 해직됐다. 98년 사면 후 복직됐지만 동료와 사회의 냉대는 계속 됐고 우울증이 심화되면서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한참 작품활동을 하며 커리어를 쌓을 40대를 날려버린 것이 한이 됐고, 해직 및 휴직 기간으로 인해 연금액수가 줄어들어 정년퇴임 후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작년 정년퇴임 후에 명예교수가 되지 못하면서 더 이상 제자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된 상실감이 컸다.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한 우울감도 컸을 것이다. 마침 이 해에 오랫동안 함께 해온 홀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마 교수도 세상을 향한 미련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마 교수는 과거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는 시를 쓸 정도로 자신의 삶의 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던 것 같다. 

마광수 삶의 궤적이 이렇게 바뀐 건 바로 그가 야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의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근원이 성에너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가 야한 이야기를 선택한 더 큰 이유는 우리 사회 이중성의 고발이다.

 

우리 사회는 도덕을 강요했다. 짦은 치마도 못 입게 할 정도였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도덕을 요구한 지도자는 밤에 난잡한 술판을 벌였다. 엄숙주의, 도적주의에 가려진 욕망의 실체. 마 교수는 그 허위, 가식, 이중성을 깨려 했다. 성을 공공연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보다 건강해진다고 봤다. 

전통적인 동양적 보수성을 뒤집는 뇌관도 성이다. 성을 건드렸을 때 기존 체제가 발칵 뒤집힌다. 마 교수는 또 창조를 위해 변태가 돼야 한다고 했다. ‘권태는 변태를 낳고, 변태는 창조를 낳는다는 것이다. 기존 시스템으로부터 일탈해야 새로운 흐름이 생긴다는 얘긴데, 엄숙주의의 사회에서 가장 큰 일탈은 결국 성이었다. 

그래서 마광수는 위악적으로, 거의 집착적으로 보일 정도로 성을 이야기했다. 그럴수록 대중의 상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변태, 색마이미지로 굳어졌다.

 

기존 사회문화에 대한 문화적 전쟁을 선포했던 셈인데, 이 정도 싸움을 끌어가려면 맷집이 좋아야 한다. 남들의 비난을 오히려 자신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는 정신력 말이다. 하지만 마광수는 섬세하고, 심약하고, 여린 지식인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를 향한 공격은 하나하나 상처가 됐고, 그것이 우울증을 심화시켜 문학적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 에너지를 잃게 했고, 그렇게 의기소침해진 그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져 더욱 외로움과 우울에 시달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광수 소설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으로 봤을 때, 우리사회의 엄숙주의를 깨면서 성담론을 일으켰고 90년대에 나타난 욕망의 해금을 선취한 전위였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욕망이 폭주하고 섹드립이 만개하면서 성담론의 불온성이 약화되긴 했지만 90년대에 그가 구속에 해직까지 당하면서 사회와 충돌한 것은 역사의 한 장으로 남을 것이다.

 

마광수 사건을 보면서 표현의 억압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정치권력이 마음에 안 드는 표현을 한 사람을 억압했다. 90년대보다 얼마나 나아진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일탈자 변태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박근혜 올랭피아풍자화 소동을 보면 관용폭이 그리 넓어보이진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문학은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고 창조적 불복종이라는 마광수의 정신이, 그의 문학적 성과와는 별개로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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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