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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정선희 죽이는 보도 그만 하라



23일 오전에 한 포털 메인에 이런 기사가 떴다.


“안재환 유가족, ‘정선희, 사람의 도리는 아냐’”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다. 기사를 보니 정선희가 이사를 했다는 얘기다. 유가족이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다. 무슨 죄 짓고 외국으로 도망간 것도 아니고 이사 좀 한 게 사람의 도리랑 무슨 상관이 있나? 정선희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도 밝혀진 바가 없다.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데 왜 자꾸 이런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나?


신문에서 편집권이 무서운 것은 기사의 제목과 배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제목에서 받은 인상으로 사태를 파악한다. 세부적인 기사 내용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편집과 제목이 중요하다.


정선희가 사람의 도리를 못 했다는 제목이 매체와 포털에 편집돼 올라가면, 정선희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와 상관없이 나쁜 인상이 강렬하게 남게 된다. 그 정도로 난도질하려면 무슨 확실한 증거가 나온 다음에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증거가 나와도 그렇다. 천인공노할 중죄도 아니고, 정치인의 파렴치한 행위도 아니라면 세상 살면서 할 수 있는 일 정도로 한 사람을 저렇게 몰아세우면 안 된다.


밤에는 또 이런 제목의 기사가 한 포털 메인에 떴다.


“안재환 유가족 ‘정선희가 남편을 노숙자로 만들었다‘“


정선희를 죽일 셈인가? 매체는 자신들이 단지 유가족의 주장을 전했을 뿐이라고 보도 행위를 정당화할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세상엔 전할 말이 있고, 전할 필요가 없는 말이 있다.


- 개그맨 정선희를 죽이지 마라 -


정선희는 연예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개그맨이다.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다. 과거에 한 개그맨은 추문으로 인해 자신이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우스운 사람’이 됐다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추문이 잇따르면 사람이 우스워진다. 그러면 웃기기 힘들어진다.


우스운 사람 정도가 아니다. 매체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라붙어 안재환-정선희 보도를 지겹도록 해대는 바람에, 정선희는 보도 내용과 상관없이 대중에게 ‘불쾌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정선희의 실체나 사건의 실상과는 전혀 별개로, 점철되는 불쾌한 보도의 이미지가 그 이름에게로 옮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다.


매체가 개그맨으로서의 정선희를 죽이고 있다. ‘개그인격살인’이다. 사실인용 보도를 했다고 해서 매체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건 말건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해 기사 장사만 하면 그만인 게 매체의 윤리인가? 사실 보도 그 이상의 성숙한 보도태도가 요청된다. 


연예인은 좋은 느낌, 좋은 이미지, 좋은 기억과 연결돼야 하는 존재다. 매체가 정선희를 안 좋은 기억에 결박 짓고 있다. 설사 나중에 정선희의 결백이 밝혀진다 해도 정선희의 ‘웃기는’ 연예활동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연예인은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이미지가 망가질까봐 쉬쉬하는 존재다. 매체가 바로 그런 이미지를 부숴버리고 있다. 조폭인가?


-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기다려라 -


그렇게 이 사건이 보도하고 싶다면 최소한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질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야 한다. 밝혀진 것이 없는데 극단적인 주장만 자꾸 보도해봐야 불쾌한 인상만 남길 뿐이다.


정선희도 보호 받아야 할 시민이고, 대중 연예인이 직업이라는 점이 중시되어야 한다. 정선희의 사생활은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다. 가혹한 루머보도는 개인에 대한 테러나 마찬가지다.


‘아님 말고’식 보도로 평생 상처 받을 사람이 있다. 정치인이나 권력자같은 공인이라면 한 점의 의혹이라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맞으나, 한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의혹 까발리기는 사회적 공해다. 당사자에게 상처가 되고 사회적으로도 공해인 보도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 정선희 보도 이제 그만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