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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꽃남 돌풍, 에동 자멸의 이유

 

 월화 미니시리즈 대전이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꽃보다 남자>의 무서운 질주 때문이다. 동시에 <에덴의 동쪽>은 완만하게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수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며 연기대상을 싹쓸이했던 위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변화는 너무나 극적이다. 동시에 방영되는 <떼루아>는 큰 소리 한 번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숨만 쉬고 있다.


 <꽃보다 남자>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미니시리즈로는 놀랍게도 시청률이 30%를 돌파했다. 그 속도도 매우 빠르다. 젊은이들의 인터넷 다시보기 문화가 극성한 이후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리 화제가 되는 미니시리즈도 시청률 20%를 넘기 힘든 것이 요즘 현실이었다. 열풍을 일으켰던 <베토벤 바이러스>는 팬들이 시청률 올리기 운동까지 펼쳤으나 20% 고지를 겨우 넘기는 선에서 그쳤다. 저 유명한 <온에어>도 30%에는 미치지 못했었다. <꽃보다 남자>의 30% 돌파는 작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원작만화도 판매량이 20배 이상 급증했다고 한다. OST 수록곡들도 온라인 음원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옷차림과 소품들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동대문 쇼핑몰 방문자 수가 늘었다고 할 정도다. <꽃보다 남자>는 KBS 월화 미니시리즈에서 권상우의 <못된 사랑>, 에릭의 <최강칠우>, 현빈·송혜교의 <그들이 사는 세상>도 못했던 일을 해내고 있다. 그야말로 제대로 ‘사고’ 쳤다.


- <에덴의 동쪽>의 자멸 -


 뭐니뭐니해도 <에덴의 동쪽>이 ‘꽃남열풍’의 일등공신이다. <에덴의 동쪽>이 자기 한 몸 불살라 <꽃보다 남자> 가는 길에 빛을 밝혀 주었다. 현재 <에덴의 동쪽>은 눈물바다에 빠져 있다. 핏줄타령 때문이다. 두 집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그런데 절절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이 반복적으로 ‘핏줄 핏줄’ 하면서 울어대는데 한 달 내내 몰입해줄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청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모양새다.


 2008년에 이른바 복고열풍이 불 때 영화부문의 성적은 좋지 않았었다. 노골적으로 복고를 내세우며 개봉 전에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고고70>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원더걸스와 <에덴의 동쪽>은 엄청난 성공을 일궜다.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과거의 ‘칙칙함’을 원했던 게 아니었다. 복고 스타일을 차용하되 밝은 것, 구질구질하지 않은 것, 마치 새 것처럼 보이는 복고를 원했던 것이다. 원더걸스는 상징적이다. 화려하고 걱정근심 없는 복고. 보고 있노라면 즐거운 복고. 그래서 똑같은 복고 음악 영화임에도 밝고 경쾌한 <맘마미아>는 뜨고 어두운 색조의 <고고70>은 졌던 것이다.



 <에덴의 동쪽>은 물론 원더걸스나 <맘마미아>에 비하면 어둡다. 그러나 2008년에 방영된 <에덴의 동쪽>은 근본적으로 ‘성공담’이었다. 이건 밝은 이미지다. 반면에 <고고70>은 좌절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동철의 거침없는 성공이야기를 원했다.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국제적 사업가로 성공하며 한국 최고의 권부까지 접근하는 놀라운 성공스토리. 게다가 이동철의 동생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서울대 타이틀에 검사까지 쟁취한다. 어찌된 일인지 이동철 집안의 어머니가 하는 일도 승승장구다. 자영업이면 자영업, 사업이면 사업, 손을 대는 일마다 잘 된다. 이동철 집안은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스토리를 써나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았었다. 2008년에 방영된 <에덴의 동쪽>은 이야기 전개가 매우 빨랐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동철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 어린 아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거대한 이야기가 정신없이 전개됐다. 이러한 ‘빠르기’와 ‘밝음’이 <에덴의 동쪽> 성공의 비밀이었다.


 2009년 들어 <에덴의 동쪽>은 다른 드라마가 됐다. 한 달 내내 핏줄타령, 눈물바다다.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성공담은 멈췄다. 이동철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인수한 회사 부도걱정을 하고 있다. 악역인 신태환도 거침없이 성장했었다. 지금은 신태환도 같은 처지다. 이씨 집안도, 신씨 집안도 빛나는 성공은 끝났고 핏줄타령에 지지부진한 눈물바다만 남았다. 마치 <고고70>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자 젊은 시청자들이 이탈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멜로도 끝났다. <에덴의 동쪽>은 작년 연말에 이다해까지 중도하차시키며 이동철의 멜로에 공을 들였었다. 그런데 정말 믿기 어렵게도 2009년 들어서자마자 애틋한 로맨스가 사라졌다. 이연희는 갑자가 아이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로맨스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건 바로 핏줄이다. 이연희까지도 자기 아버지에게 핏줄 타령을 한다. 이럴 거면 이다해는 왜 하차했다는 말인가? 자멸이다. 오갈 데 없어진 시청자들을 흡수한 것이 바로 <꽃보다 남자>다.



- <꽃보다 남자> 절반의 자체발광 -


 <꽃보다 남자>엔 다 있다. 이 드라마는 우선 빠르다. 지지부진한 이야기 전개는 이 드라마와 관련이 없다. 한국에 보도된 일본 네티즌들의 한국판 <꽃보다 남자> 반응에도 이야기 전개가 빠르다는 지적들이 나왔었다. <에덴의 동쪽>처럼 서사적인 맛은 없지만 대신에 경쾌하다. 구혜선이 치명적인 오해를 당해도 한 회 만에 다 해결된다. 옛날식 트렌디 드라마처럼 두 주인공이 엇갈리며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꽃보다 남자>는 밝다. 재벌집의 공작으로 가업이 풍비박산이 나도 코믹하게 처리된다. 무엇보다도 구혜선이 시종일관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떠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스토리를 써나간다. 그리고 F4는 원더걸스 이상으로 화려하다. 그림은 깨끗하고 예쁘다. 게다가 <에덴의 동쪽>에서 실종된 로맨스도 듬뿍 들어있다.



 <꽃보다 남자>도 말하자면 복고다. 너무나 노골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성격 나쁜 여자애 주위에 추종자 두 명이 붙는 설정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전통적이다. 그런 노골성은 이 드라마가 세칭 ‘막장 드라마’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것을 에둘러 포장하지 않는다. 막말과 독설의 시대에 걸맞는 직설화법이다. 너무나 노골적이고 그림이 예뻐 마치 ‘새 것’처럼 보인다.


 <떼루아>는 우아한 통속극이다. 이것도 신데렐라 이야기이긴 하지만 ‘왕자님’ 역할을 하는 남자 주인공이 노골적이지 않다. <꽃보다 남자>의 남자 주인공은 “나? 왕자님이야!”라고 후안무치하게 드러내고 다닌다. ‘백마 탄 왕자님’을 갈구해왔던 여성 시청자들이 이런 직설화법에 ‘총 맞은 것처럼’ 꽂힌 것이다. 아줌마 막장 드라마에서 노골적인 이혼녀용 왕자님 캐릭터가 환영받는 이치와 같다.


 예로부터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다. 성공은 사람이 하는 일과 운이 동시에 화학작용을 일으켜 얻어지는 것이다. <꽃보다 남자>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복고 막장형 트렌디 드라마’로 성공할 요인을 갖췄다. 거기에 경쟁작의 자멸이 더해져 예기치 않은 대박이 터진 것이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사회적 가치기준이고, 문화적 참신함이고 뭐고 모두 벗어던진 <꽃보다 남자>의 쾌속질주. 재미는 있는데 우려는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