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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신인류 아이돌 김연아, 열광까지만 하자

 

 김연아 이전에도 스포츠스타는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손기정부터다. 손기정은 망국의 백성들에게 영웅이었다. 손기정 사진에서 일장기가 말소된 사건은 스포츠영웅과 국가주의가 동전의 양면임을 1930년대에 이미 보여줬다. 당시 한국인은 손기정을 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산업화 시기엔 한국 최초의 권투 세계챔피언 김기수와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그리고 ‘박치기왕‘ 김일이 있었다. 손기정이 서양인을 달리기로 제쳤다면, 이들은 서양인과 직접 몸을 맞부딪혀 싸워 이겼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신화가 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뭔가, 굶주리고 주눅 든 듯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차범근도 그런 ’헝그리‘ 정서로부터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80년대에도 임춘애로 상징되는 배고프고 한 맺힌 이미지는 여전했다. 하지만 유도 금메달리스트 하형주는 조금 달랐다. 그는 훨씬 당당한 이미지로 80년대의 자신감을 표상했다. 하형주는 그야말로 늠름해보였고 한국인은 열광했다. 이 당시엔 이미 권투 세계챔피언 배출이 당연시되는 시대가 됐다. 한국인의 자긍심은 그에 비례해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몸’ 하나 가지고 ‘악으로 깡으로’ 세계와 맞서는 이미지였다.


 90년대엔 박찬호와 박세리가 등장했다. 이들은 보다 많은 투자가 요구되며, 선진국의 백인들이 주류를 차지하는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을 이뤄냈다. 야구와 골프는 ‘헝그리 종목’인 권투나 레슬링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 분야에서 세계적 성취를 이뤄낸 이들에게 한국인은 열광했다. 마침 이때는 외환위기 시기였다. 이들의 성취는 한국인의 열패감을 덮을 만큼 눈부셨다.


- 승리의 한국 -


 2002년에 전혀 다른 지평이 열렸다. 바로 ‘2002 한일 월드컵’이다. 한국인은 이때 자신감에 차있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IT라는 신천지가 열렸다. IT는 그동안 선진국을 따라만 했던 나라에서 처음으로 선진국과 함께 출발한 산업부문이다. 동시에 민주주의도 이뤘다. 굶주리고 한 맺히고 주눅 든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을 표상했던 것이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이다. 이들은 한 개인의 특출난 노력이 아닌 팀웍으로 세계 4강에 안착했다. 연습경기에서 이들이 보여준 기량은 한국인을 흥분시켰다. 과거의 그 한국팀이 아니었다. 단순히 이겨서가 아니다. 이들이 보여준 경쾌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모습. 패스에서 패스로 이어지며 순식간에 골을 만들고는, 이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질주하던 한국 대표팀.


 황선홍은 본선 첫 골을 넣고는 활짝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울고 짜면서 배고픈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한국인은 모두 길바닥에 뛰쳐나와 자축했다. 대표팀은 국민의 영웅이 되고, 붉은악마는 스스로 영웅이 됐다. 한국인은 전혀 다른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라는 선진국의 세계에 우뚝 섰을 때 그 열광은 이어졌다. 이렇게 어떤 운동선수가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한계를 돌파하고 승리의 지평을 열었을 때 국민적인 영웅이 된다.


- 신인류 국민아이돌 김연아 -


 김연아와 박태환에서 한국인은 손기정에서부터 시작된 질주의 완성형을 보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스타들과 전혀 다르다. 김연아와 박태환은 새롭게 진화한 21세기형 한국인이다. 이들에겐 단 한 점의 그림자도 없다. 서양인들과 함께 섰을 때도 빛난다. 한국인의 오랜 콤플렉스인 ‘숏다리’도 이들에겐 없다. 체형과 기량, 모든 부문에서 이들은 한국인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들은 선진 부자형 종목인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에서 세계적인 성취를 이뤄냈다. 박태환보다 김연아가 더 빛나는 것은, 김연아가 ‘세계 원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찬호도, 박세리도, 박지성도 이루지 못했던 성취다. 이들의 표정에선 자신감과 여유가 넘쳐난다. 마침 지금은 제2의 경제위기 시기다.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던 한국인의 경제적 열망은 좌절됐다. 그 때문에 김연아의 미소는 더욱 빛나고 있다.


 최근 연쇄살인과 민생파탄, 정치불안이 이어지면서 한국인에게 자신감을 준 소식은 야구대표팀의 선전과 김연아의 세계1위가 유일하다. 김연아가 지난 2월에 1위를 했을 때는 강호순 사건과 용산참사 소식으로 한 주 내내 우울한 와중이었다. 열패감과 무력감에 빠진 한국인에게 신인류 김연아가 미래의 빛을 보여줬다.


 그것은 전 국민적인 열광을 만들어냈다. 막장 드라마와 막말 예능 이상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스포츠스타들이 유일하다. 김연아는 소녀시대를 뛰어넘는 국민아이돌이다. 그야말로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는 인기다. 한국은 지금 김연아 등 스포츠스타에게 빠져있다.


- 그들을 이용하지 말라 -


 우리가 원래부터 여유 있고,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렇게 운동경기에서의 승리에 열광했을까? 한국인의 열광엔 단순히 ‘즐기는’ 차원이 아닌 그 이상의 비원이 느껴진다. 한국인에겐 지난 백년 동안 겪은 열패감과 최근 경제위기로 겪고 있는 열패감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경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한국인들은 경기를 즐기지 않고 승리에만 집착한다고 외국인들이 지적한다.


 김연아가 빛나면 빛날수록, 그래서 모든 한국인이 거기에 열광할수록, 그것은 현실의 어려움을 반증하게 된다. 일부에선 스포츠스타에 대한 한국인의 열광을 애국주의, 국가주의라고 비웃는다.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타당할까? 난 한국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애국주의같은 공격적인 정념이 아니라, 순수하게 애타는 마음이다. 열패감을 해소하고 자신감을 줄 대상을 찾는. 이런 정도의 마음까지도 비웃는 건 너무 냉혹하다.


 문제는 이런 국민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WBC 경기가 한참일 때 정부 정책블로그는 태극기와 함께 야구대표팀의 화보를 내걸었다. 아니, 정부정책하고 야구대표팀이 무슨 상관이 있나? 국가가 국기와 함께 대표팀 화보를 내거는 것은 노골적으로 스포츠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일이다.


 김연아가 지난 2월에 세계1위를 하자 한나라당은 김연아 이미지를 만들어 그 앞에서 회의를 했다. 이번에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하자 김연아와 박희태 대표를 합성한 이미지를 만들어 당 홈페이지에 걸었다. 김연아 ‘이미지 팔아먹기‘다. 고려대도 김연아의 사진과 함께 자신들이 김연아를 키워냈다는 듯한 학교광고를 내보내 빈축을 샀다. 전주시도 세계선수권 대회장으로 김연아를 찾아가 무리한 요구를 해 구설수에 올랐다.


 열정과 땀으로 성취를 이뤄내고, 국민이 순수한 마음으로 거기에 열광하는 것까지는 좋다. 다른 무언가를 얻어내려 그것을 멋대로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스포츠의 타락은 시작된다. 열광까지만이다. 딱 거기까지만 하고 이용은 하지 말자. 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