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듀엣가요제 특집에서의 승자는 단연 제시카와 타이거JK, 그리고 윤미래였다. 이정현도 상당한 소득을 거뒀다. 반면에 애프터스쿨에겐 재난이었다.
정준하와 애프터스쿨팀의 경우 작곡가로 윤종신을 고른 것이 패착이었다. 윤종신은 예능스타인 작곡가로 재미있는 구도를 만들 수는 있지만, 1회적인 이벤트를 위해 좋은 결과물을 내놓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예능스타이므로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예능스타로서 그는 이번 듀엣가요제에 음악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웃기는 예능 이벤트 정도의 느낌으로 임한 것 같다. 에픽하이는 중간점검 때 장난스럽게 임했다가 위기감을 느꼈는지(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이후 곡을 바꿨는데, 윤종신은 중간점검 때 망신을 당하고도 곡을 바꾸지 않았다. 별로 신경을 안 쓴 듯한 인상을 줬다.
또다른 패착은 정준하를 내세운 것이다. 다른 팀들은 <무한도전> 멤버가 아닌 초대가수를 충분히 활용했다. 정준하팀은 애프터스쿨을 코러스걸 정도로 세웠을 뿐이다. 결국 정준하의 답답한 이미지가 애프터스쿨을 삼켰다.
애프터스쿨의 발랄함이나 섹시함을 전면에 배치했으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애프터스쿨에게도 아쉬운 일이었다. <무한도전>에서 주목 받는 것은 가요프로그램이 몰락한 지금 가수에게 더 없는 기회다. 얼마 전 2PM은 <무한도전>에 잠깐 출연해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출연한 것 자체가 애프터스쿨에겐 좋은 일이었지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던 기회였다. 불행히도 그것을 살리지 못했다.
결국 ‘영계백숙 오오오오’라는 불쾌야릇한 중독성과 어색한 무대만 남긴 실패작이었다. 가수는 무너지고 후렴구 혼자 살았다. 정준하를 무시하고 애프터스쿨 위주로 갔으면, 결과적으로 정준하도 살고 애프터스쿨도 살 기회였는데 아쉽다.
- 제시카 대반전 -
박명수와 제시카팀은 정준하팀과 정반대로 갔다. 노래 자체가 박명수를 완전히 무시하고 제시카 위주로 만들어진 곡이었다. 개인적으로 여태까지 본 쇼프로그램들을 통틀어 이번처럼 제시카가 부각되는 구도를 본 적이 없다. 제시카에겐 로또같은 무대였다.
최근 제시카에겐 욕설 논란이라는 구설수가 있었다. 얼음공주라는 이미지도 있었다. 이번 <무한도전> 출연은 제시카의 이미지를 급반전시켰다. 무대 위의 제시카는 시종 발랄하고 화사해보였으며, 박명수가 개그를 칠 때마다 즉각적인 리액션을 보였다. 이런 것들은 호감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소녀시대 속에 있었을 때보다 이번 <무한도전>에서 제시카는 훨씬 빛났다. 애프터스쿨이 정준하의 이미지에 빨려들어갔다면, 제시카는 박명수의 버벅거리는 이미지를 도약대로 삼아 뛰어올랐다.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박명수의 살신성인이다. 예능스타가 아닌 오로지 음악만 하는 작곡가를 선택한 것도 승인이었다. 게다가 그 작곡가는 소녀시대의 노래를 만든 사람이므로 제시카의 장점을 잘 드러내 줄 수밖에 없었다. 구도가 제시카를 위해 흘러갔던 것이다.
- 타이거JK와 윤미래 대박! -
유재석과 타이거JK팀은 서로를 살렸다. 유재석은 타이거JK의 음악을 통해 ‘역시 유재석!’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고, 타이거JK는 유재석과의 훈훈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간 타이거JK’의 무한한 매력을 전 국민에게 알렸다. 최고의 윈윈 듀엣이었다.
거기에 타이거JK의 부인인 윤미래까지 이번 특집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윤미래 노래 잘 하는 거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국민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포스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 부부가 이번 <무한도전> 특집에서 사실상의 주인공이 됐다. 타이거JK의 작업실은 화려하지도 않아서, <무한도전>이나 <1박2일>같은 요즘 국민 예능 프로그램의 보통사람 컨셉에 절묘하게 어울렸다. 타이거JK 부부는 인간적인 분위기로 본무대가 시작되기 전이 이미 무한 호감을 느끼게 했다.
본 무대에서 윤미래는 왜 이 세상에 가수가 존재하는 지를 실력으로 알려줬다. 타이거JK 부부로 인해 웃자고 시작한 허무한 이벤트가 진짜 가요제로 승격됐다.
- 이정현, 윤도현, 노브레인, 에픽하이 -
이정현도 수혜자다. 자기 노래 부를 때보다 더 좋았다. 최근 이정현은 답답하고 도식적인 퍼포먼스로 식상한 분위기였다. 깡마른 몸매와 인공적인 퍼포먼스로 벗어도 섹시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무한도전> 무대에서 이정현은 훨씬 자연스럽고, 생생하고, 섹시해보였다. 노래도 이정현만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윤도현, 노브레인, 에픽하이는 기본을 했다. 윤도현은 하드락의 매력을 선보였다. 같은 노래라도 길이 불렀을 때와 윤도현이 불렀을 때는 천지차이였다. 윤도현이 얼마나 카리스마 있는 락커인지를 분명히 각인시켰다. 노브레인은 언제나 그렇듯이 펑크를 선보였고, 에픽하이는 중간점검 이후 기민하게 곡을 바꾼 것처럼 보여 그들의 재기발랄함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아무 생각 없이 웃자고 시작한 무대였는데 아티스트들이 가세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볼 만한 행사가 됐다. 그 속에서 발랄함과 화사함의 독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던 제시카에겐 행운의 무대였고, 레전드급 실력은 물론 인간미까지 전방위적으로 보여준 타이거JK와 윤미래에겐 정말 대박인 무대였다. 물론 그들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시청자에게도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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