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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원더걸스 미국소식에 왜 화를 내지?

 

원더걸스의 미국소식이 전해지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나로선 이해가 안 된다.


원더걸스는 한국 최고의 스타다. 그들이 어디에서 활동을 하건 그 소식들이 한국에 속속 전해지고, 중요하게 기사화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또, 동양사람들은 서양을 자신들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식민지 시대 이래 콤플렉스에 쩔어서 그렇다.


그에 따라 한국 관계의 일에 대한 서양의 반응은 언제나 대서특필된다. 원더걸스에 대한 보도들도 이런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촌스러움’인 서양 소식에 대한 지나친 호들갑을 비판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유독 원더걸스 측에게 분노하는 것은 이상하다.



원더걸스 측이 자신들의 미국활동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지나친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에 화가 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원더걸스가 현재 미국에서 톱스타의 대접을 받지 못함은 물론 앞으로의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면서 그런 소식들에 기뻐해주는 것이다. 원더걸스 관련 과포장된 기사들에 휘둘릴 정도로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마케팅과 홍보는 모든 상업활동의 기본이고, 거기엔 언제나 과장이 섞이게 마련이다.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 갑자기 원더걸스와 그 소속사에 분노하는 것은 이상하다.



미국은 팝의 종주국이고 미국시장은 세계최대의 팝시장이기도 하다. 한국의 음악산업계는 그곳에 손톱만큼의 지분도 갖고 있질 못하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아주 작은 가능성만 확인한 정도라도 이 땅에선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건 절대로 지나친 호들갑이 아니다. 종주국인 서양의 직접 식민지도 아니고 일본을 거친 2차 식민지에 벗어난 지 수십 년 만에 본바닥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사건이다. 문화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한국은 국산차의 미국 진출에 열광했었다. 하지만 그 한국차는 미국에서 ‘똥차’ 취급을 받았다. 그러면 국산차 미국 진출이 무의미한 일이 되는 건가? 국민들이 업체의 홍보와 언론에 놀아났던 건가?


아니다. 그 당시엔 진출 그 자체만으로 큰 뉴스였던 게 맞고, 그걸 기뻐하는 것도 맞는 일이었다. 그런 에너지가 수십 년 간 작동해 드디어 2009년 오늘에 이르러 한국차에 대한 미국 소비자 만족도가 상위권에 올라선 것이다.


미국시장에 진출하건 말건 한국사회가 아주 쿨하게, 아주 냉정하게, 콧방귀도 안 뀌었다면 기업도 그런 무모한 도전에 계속해서 투자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 그런 도전에 청춘을 불사르는 관계자들의 열정도 배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도 그나마 버티고 있는 한국 자동차산업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자동차산업의 엄청난 전후방효과와 고용효과가 실종됨으로 인해 한국인의 삶의 질은 훨씬 후퇴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최대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맞다. 진출하기만 한다고 당장 그 시장을 휩쓸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맨땅에 헤딩’하는 그 정신을 기특해하고, 그런 사건의 의미를 기뻐해주는 것 아닌가?



원더걸스의 미국활동 보도들이 좀 ‘깨방정’스럽게 나온다고 해도 굳이 거기에 대해 화를 내야 하는지 의문이다. 화가 나더라도 거기에서 한국 언론의 일반적인 보도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나가야지, 왜 미국에서 고생하는 원더걸스와 소속사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나?


한효주 열애설 사태에서도 한국 언론의 ‘깨방정’ 보도행태가 다시금 웃음거리가 됐다. 하루 종일 가짜 홈피에 놀아나면서 보도경쟁만을 일삼았던 것이다. 그 전날엔 정식으로 은퇴발표도 안 한 김준희가 은퇴한다고 보도했던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 연예뉴스 보도문화가 이렇다. 한국 최고의 걸그룹 원더걸스 정도면 연예매체에겐 엄청난 떡밥이다. 거기에 미국까지 엮였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당연히 낚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런 분위기가 불편할 순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원더걸스 측에게 분통을 터뜨리는 건 납득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