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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걸그룹, 2PM 모두 벗었다

 

 유사 이래 한민족이 요즘처럼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낸 적이 있었을까?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욕망을 감추는 것이 미덕이었다. 특히 물질적인 욕망과 육체성은 가장 드러내선 안 될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노골적으로 물질적인 욕망을 좇으며, 육체성을 찬미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그것은 TV에서 상업적 성공을 위한 노출로 나타나고, 육체에 대한 기이할 정도의 민감증으로 나타난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가 시작된 이후 점점 강해졌었는데 2009년에 그 정점에 달한 느낌이다.


 과거에는 주로 여성의 얼굴이 화제가 됐었다.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를 통해 여배우의 가슴 노출이 종종 화제가 됐었지만, 올해처럼 여성의 육체가 노골적으로 관찰된 적은 없었다. 육체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에스라인 열풍에서 그 징후가 감지됐었다. 에스라인 열풍은 여성의 풍만한 육체에 탐닉하는 사회현상이다.


 최근엔 그 육체가 부위별로 분절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육감적인 엉덩이가 강조됐다. 그 다음엔 허벅지가 집중 탐구의 대상이 됐다.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이 허벅지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유이는 ‘허벅 유이’로 불리며 허벅지의 시대를 열었다. 뒤이어 소녀 아이돌인 소녀시대의 티파니가 베스트 허벅지 연예인으로 선정됐다는 뉴스가 나와 인터넷 게시판을 술렁이게 했다.


 허벅지에 대해 이렇게 고조된 관심은 마침내 ‘꿀벅지’라는 야릇한 신조어를 정착시키는 데에 이른다. 꿀벅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따옴표 안에 갇혀있었으나, 어느새 따옴표 밖으로 나와 예능 프로그램 자막에까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일상어가 됐다.


 꿀벅지라는 생소한 단어가 정착되는 기간은 걸그룹의 최전성기였다. 2009년이 처음 시작됐을 때만 해도, 소녀시대가 몸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고 나타났을 때 지나치게 야하다며 선정성 논란이 일었었다. 하지만 곧 허벅지가 대두되며 어린 연예인이 다리를 통째로 드러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여름이 되자 엉덩이춤이 걸그룹의 아이콘이 됐고, 무대 위에서 상당히 강한 수위의 퍼포먼스를 펼쳐도 별다른 논란이 터지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그나마 포미닛 현아의 노출이 화제가 됐는데, 그녀가 어린 나이에 마치 속옷이 드러난 것 같은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올해를 정리하는 ‘MAMA' 행사에서 아이비의 퍼포먼스가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아이비가 2PM의 니쿤과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노출 의상과 성적인 퍼포먼스 자체는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 이젠 노출이 당연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나마 연말에 지드래곤의 선정적인 연출이 물의를 빚으며 아직까지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걸그룹의 귀여움과 노골적인 육체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트렌드는 ‘베이비 페이스’의 열풍으로 나타났다. 베이비 페이스란 유이나 신민아처럼 어리고 순진하게 생긴 여자 연예인이 풍만한 에스라인 몸매를 갖춘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곧 ‘청순 글래머’ 열풍으로 진화했다. 과거엔 청순한 소녀스타에 대중이 열광했다면, 이젠 청순한 얼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까지 갖춰야 하는 것이다.


 이런 육체성의 대두는 당연히, 가요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사극에서 여성 연예인의 목욕 장면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다. 올 여름엔 심지어 전통적인 가족 공포시리즈인 <전설의 고향>이 낯 뜨거운 노출과 과도한 정사 장면으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대물에서도 여성 연예인의 수영복 노출은 기본이 됐다. 오연수, 황신혜 등 중견 배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 코미디언들의 노출도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공개코미디를 보면 여성 연기자의 옷이 몸의 라인을 강조하거나 드러내는 쪽으로 가는 경향성이 확연하다. 이경실처럼 육감적인 몸매의 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기도 한다. 케이블TV가 노출에 탐닉하는 것은 이제 화제 거리도 안 된다. 인터넷 세상에선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레이싱걸 열풍이 분 지 이미 오래다. 미성년자들이 즐기는 게임에서의 노출 수위도 만만치 않다. 게임 캐릭터들이 풍만한 몸을 겨우 가리는 옷을 입고 서있는 포스터가 PC방마다 나부낀다. 올 연말의 국제게임쇼에선 게임 캐릭터 의상을 입은 행사모델이 과도한 노출로 인해 퇴출되는 초유의 사건까지 벌어졌다. 청소년들이 게임 캐릭터 의상을 만들어 입고 쇼를 펼치는 ‘코스프레’에서의 노출 수위도 심상치 않다.


 육체성의 대두는 여성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올해는 처음으로 남성의 육체가 구체적으로 찬미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몸짱 열풍이 불며 남성의 근육도 점차 화제가 됐으나, 올해는 그 정도가 질적으로 달랐다. 걸그룹 열풍, 허벅지의 돌풍이 불 때 유일하게 남성 아이돌로 그에 필적하는 성공을 거둔 그룹이 2PM이었는데, 그들의 별명은 ‘짐승돌’이었다. 그들은 엠넷쇼에서 윗도리를 벗어 제치고 근육을 노출하는 물쇼로 그 별명에 값했다. 여성에게 허벅지가 있었다면, 올해 남성에겐 복근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초콜릿 복근’에서 ‘꿀복근’에 이르기까지 복근 열풍이 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 출연자의 옷을 들어 올려 배를 보여주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세바퀴>는 남성의 육체를 노골적으로 욕망하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에선 주기적으로 남성이 윗도리를 벗고 출연자들이 자지러지는 쇼가 상연된다.


 가히 육체의 홍수다. 절제가 미덕이었던 한국인의 욕망이 질주하기 시작한 것은 IMF 사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돈과 물질적 우월함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스펙이 최고의 미덕이 됐다. 육체는 그런 스펙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물질성과 상업성은 당연히 연예산업에서의 노출의 강도를 높여갔다. 그러자 과거엔 쉬쉬하던 성형수술이 모든 여성의 기본 코스가 되고, 남성들은 초콜릿 복근을 장착한 짐승남이 되어야 하는 사회로 변한 것이다.


 육체가 스펙이 된 현실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것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사태였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나온 것도 이 시대를 반영하지만, 그런 정도의 말에 엄청난 대중적 반향이 일어난 것도 육체에 대해 과도하게 민감한 우리 시대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었다. 감히 남자의 키를 가지고 남자를 능멸했다고 그 여성을 공격한 남성들은, 오늘도 인터넷에서 여성 육체를 부위별로 품평하고 있고 방송사와 기획사들은 그들을 위해 꿀벅지와 청순 글래머를 발굴하고 있다.


 육체에 집착하고 육체를 찬미하는 사회에서 시청률을 추구하는 방송이 노출 수위를 높여가는 건 필연적인 수순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우린 해마다 노출의 신경지를 보게 될 것이고, 완벽한 육체의 노출을 보며 자괴감에 빠지는 우리 국민의 육체 강박증도 깊어질 것이다. TV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의 시청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성형욕구가 20% 이상 더 강하다고 한다. TV가 육체 과민증 국민을 만들고, 육체 과민증 국민의 욕망이 다시 TV의 노출을 부르는 것이다. 2009년은 그 정점이었는데, 미디어상업화로 인해 내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