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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소녀시대 또 삭제당하다

 

가수들의 참여거부로 논란을 빚었던 ‘MAMA’가 결국 소녀시대가 삭제된 채 치러졌다. 소녀시대를 뺀 2009년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녀시대를 빼고 치른 2009년 시상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올해의 노래상을 받은 2NE1의 ‘아이 돈 케어’의 경우, 이 노래가 올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소녀시대의 ‘Gee'가 일으켰던 선풍에는 분명히 미치지 못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Gee'보다 ‘아이 돈 케어’를 더 좋아한다. 그러나 올해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싱글을 말하라면 ‘Gee'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건 손으로 해를 가리는 것과 같다.


올해는 아이돌의 해였고, 특히 아이돌 중에서도 걸그룹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걸그룹의 2009년을 연 팀이 바로 소녀시대였으며, 그들은 2009년 내내 그 중심에 있었다. 주식의 어법으로 말하면 걸그룹 테마주 중에 대장주였던 셈이다. 비록 여름에 2NE1의 기세에 밀린 감이 있지만 2009년 전체를 놓고 보면 소녀시대의 위상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현실이 그러하면 시상결과에도 그것이 당연히 반영돼야 한다. 현실과 시상이 따로 놀면 시상식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시장에서의 상업적인 성공만을 기준으로 시상할 수 없다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가창력이나 음악성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올해 주요 수상자들을 보면 빅뱅의 지드래곤, 2NE1, 2PM, 카라, 브라운아이드걸스, 슈퍼주니어 등이다. 모두 아이돌인 것이다. 철저하게 상업적 성공, 팬클럽의 지지가 기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인 시상식이었던 것이다.


소녀시대가 빠진 것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이런 시상식 자체의 기준에서조차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상업적 기준으로 시상하면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노래를 빼는 것은 어떻게 봐도 이해할 수 없다.


소녀시대와 2NE1 사이에 딱히 가창력의 차이가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카라도 마찬가지다. 가창력과 음악성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돋보이는 걸그룹이라면 브라운아이드걸스를 유일하게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자그룹상이 브라운아이드걸스에게 돌아간 것은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창력이나 음악성이 그렇게 중요한 기준이라면 다른 시상결과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상결과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철저히 시장에서의 상업적 성공을 기준으로 한 대형기획사 아이돌들의 잔치였다. 이런 가운데 유독 올해의 걸그룹 부문에서만 가장 성공한 소녀시대를 빼고 음악적 실력이 더 나은 브라운아이드걸스를 선택했다는 것도 부문 간 형평성이 의심스러운 처사였던 것이다.


이번 시상식에 출연하지 않은 SM 측을 탓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런 결과는 이미 지난 여름 ‘엠넷초이스’에서 예고됐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주인공은 2PM과 2NE1, 이효리였다. 그때도 역시 소녀시대가 배제됐었던 것이다. 이미 그런 일을 겪었고, 같은 일이 또 반복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들러리 서기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난 여름 ‘엠넷초이스’의 시상결과를 보고, 어차피 음악성을 따지는 것이 사치인 시상식이라면 상업적 기준만이라도 공정하게 적용해달라고 주문했었다. 최소한의 공정성조차 의심스러운 시상식들이 각 부문별로 넘쳐나니, 음악성이나 작품성 등을 거론하기도 낯간지러운 상황이다.


‘MAMA’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치러진 ‘대종상’도 도대체 뭐가 기준인지 알 수 없는 ‘상나눔 상조회’로 끝났다. 한국 시상식 문화 전반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주최 측 ‘엿장수 마음대로’ 시상식이라는 한국 대중문화 시상식의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간곡히 했던 부탁을 또 할 수밖에 없다. 제발 그런 시상식은 주최 측 구내식당에서 내부 관계자들끼리 모여 조용히 치러달라는 부탁이 그것이다. 이번의 경우도 어차피 상업적 인기가 기준인 상황에서 국민이 가장 사랑한 노래가 배제됐으니 국민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남의 잔치였다고 할 수 있다.


걸그룹의 한 해를 조망하는 시상식에서, 바로 그 걸그룹의 한 해를 연 장본인인 소녀시대가 두 번 연이어 삭제되는 광경을 우린 봤다. 아이돌 천하가 돼버린 가요계의 현실을 개탄하는 것과 별개로, 공정성을 별나라로 떠나보낸 우리 시상식 문화의 현실이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