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인간미와 감동, 또 오랜만에 재회한 김종민, 박찬호와의 과거 회상을 통해 장대한 연대기의 감흥마저 안겨준 <1박2일> 김종민·박찬호편 1회에서 강호동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있어 흥미로웠다.
김종민을 납치(?)하러 가는 도중이었다. 차 안에서 은지원의 신곡을 듣다가 자연스럽게 이수근과 강호동의 랩대결이 펼쳐지게 됐다. 문제는 이 랩대결이 일정 시간을 두고 시나리오를 짠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하게 됐다는 데 있었다.
강호동은 난처한 표정으로 ‘난 안돼’... ‘안돼 프리스타일은 너무 어려워’라며 대결을 회피하려고 했다. 물에 뜨면 입만 동동 떠야 할 국민MC가 말싸움을 무서워하다니?
결국 멤버들에게 등 떠밀려 시작된 대결에서 이수근은 ‘돼지’ 운율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강호동은 어색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더니, 그 추운 날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봤다. 할 말이 생각이 안 났던 것이다. MC몽이 ‘어! 호동이형 얼굴 빨개졌어!’라고 해서 그나마 강호동의 어색한 표정에 웃음이 돌아왔다.
강호동은 1차전 패배 후 계속해서 머리 속으로 랩을 짰음에 틀림이 없다. 시간이 흐른 후에 느닷없이 그동안 짜놓은 랩으로 이수근을 공격했다. 이수근은 재치 있게 즉각 반격했다. 그러자 강호동은 다시 난감한 표정으로 돌아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국민MC의 체모는 구겨졌다.
- ‘당연하지’의 난감했던 강호동 -
유재석과 강호동의 재능, 위상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 프로그램이 <X맨>이었다. <X맨>에서 유재석은 메인MC로 프로그램을 누볐고, 강호동은 보조MC로 힘쓰는 캐릭터를 담당했다. 힘쓰는 것 말고는 강호동의 역할에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강호동의 난감함이 가장 결정적으로 부각됐던 장면은 ‘당연하지’ 코너에서였다. 즉흥적으로 상대의 약점을 잡아 말싸움으로 공격하는 코너였는데, 강호동은 이 코너에서 그야말로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할 말을 생각해내지 못해 어린 가수들한테조차도 밀렸던 것이다.
<무릎팍도사>의 대성공 이후 강호동의 이런 모습이 잠시 잊혀졌었는데, 이번 <1박2일>의 즉흥 랩대결이 다시 그의 과거를 상기시켰다. 그렇다. 강호동은 이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유재석도 지난 여름 이후 한때 즉흥랩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의 랩은 강호동의 그것과 달리 훨씬 자연스러웠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그의 즉흥적인 언어능력은 강호동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짐작된다. MC가 ‘말하는 사람’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유재석이 언제나 강호동보다 조금 앞선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강호동이 대상을 받은 KBS연예대상에서도 후배들은 유재석을 더 많이 언급했다.
연말 연예대상에서도 유·강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 장면이 있었다. 신동엽이 대상 후보자 인터뷰를 할 때, 강호동은 멋지게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확연했으나 어색하기만 했다. 반면에 유재석은 ‘사장님’ 조크로 빵 터뜨리며 깔끔하게 상황을 넘겼다.
- ‘재석아 내가 받아도 되나?’ -
유재석과 강호동의 그런 차이, 강호동의 그런 약점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강호동 자신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강호동의 천재적인 감각을 믿기 때문이다. 둔감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강호동은 그동안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을 보여왔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당연히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강호동이 대상을 받을 때마다 하는 말, ‘재석아, 내가 받아도 되나?’에서 그런 강호동의 자기인식을 느낄 수 있다. 유재석이 있는 자리에서 다른 출연자들이 강호동을 언급하면서 유와 강을 비교하면 유재석은 그냥 웃고 만다.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다. 반면에 강호동이 있는 자리에서 다른 출연자가 유재석을 언급하면 강호동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의 표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바로 강호동의 이런 점 때문에 난 그를 좋아한다. 강호동의 약점은 그 자신에겐 분발의 계기로, 보는 이에겐 인간미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를 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인가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타고난 재치, 입담만 믿고 태만한 것처럼 보이는 재기발랄한 MC들보다 강호동에게 더 끌리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가 당황하거나, 뭔가를 기대하거나, 멋진 말을 하려고 할 때는 티가 난다. 시상식에서도 유재석은 항상 매끄럽게 넘어가는데, 강호동은 뭔가 어색해 보인다. 매끄럽게 넘어가는 유재석은 유재석대로 좋지만, 속을 드러내는 강호동도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약점이 드러나므로 오히려 정이 간다고나 할까?
또 지식과 언어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의 겸손함으로 나타난다. 그는 가식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실제로 자신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운동선수 출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외형적으로는 위압적인 이미지와 함께 팀 내에서 군림하는 모습도 보인다. 착한 캐릭터인 유재석에 비해 유독 많은 안티도 이런 이미지 때문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에게 허점이 없었다면, 그래서 인간미와 겸손함을 느낄 수 없었다면, 우악스럽게 군림하는 이미지만으로는 절대로 국민MC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약점과 노력하는 모습, 겸손한 자세가 우악스러움을 인간적인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에게선 사람냄새가 난다. 이건 재치를 뛰어넘는 매력이다. 특히 요즘처럼 말장난보다 공감어린 캐릭터가 예능에서 더 중요한 시기라면 더욱 그렇다. 청산유수로 즉흥랩을 하는 강호동보다, 후배에게조차 밀려서 얼굴이 빨개지는 강호동에게 더욱 정이 가는 것이다.
물론 강호동의 장점이 단지 인간미만은 아니다. 그는 언어적인 순발력이 부족할 뿐이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대처하는 순발력, 판단능력은 가히 최고라고 생각된다. <무릎팍도사>가 그의 소통능력을 보여줬고, <1박2일>이 그의 판단능력을 매회 보여주고 있다.
난 그의 판단능력이 천재적인 수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기에 친화력도 가공할 수준이다. 이런 능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그에게 즉흥적인 언어능력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더욱 겸손하고 더욱 노력하게 되며, 따라서 시청자는 그에게 더더욱 인간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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