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에 <롤러코스터>의 한 코너인 ‘남녀탐구생활’ 열풍이 불었다. 케이블TV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5% 수준으로 치솟은 것이다. 케이블TV에서 이 정도면 지상파 시청률 30%에 맞먹는 성과라고 한다. 시청률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녀탐구생활’은 시청률 수치를 뛰어넘는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바퀴>의 경우 시청률은 높지만 별다른 화제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반면에 ‘남녀탐구생활’은 수많은 사람들의 탐구대상이 되고 각종 지상파 프로그램이 패러디에 나서는 등 가히 한국 케이블TV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개가 사람을 문 것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케이블TV가 지상파 프로그램을 조잡하게 패러디하는 경우는 있어도, 지상파 프로그램이 케이블TV를 참조하는 일은 없었다. ‘남녀탐구생활’이 기적을 일으킨 셈인데 이 괴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코너 제목에 숨어있다. 바로 ‘탐구’다. 이 프로그램은 남성과 여성의 행태를 세밀하게 탐구해서, 촌철살인의 코미디적 표현으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성우 내레이션이 그 탐구의 분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남녀탐구생활’의 성우는 외계 미스테리물 <엑스파일>로 유명한 서혜정이다. 그녀가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톤으로 남녀의 생태를 분석 리포트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그래서 마치 우주인이 지구인을 탐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기계적인 소리를 내다보니 일반적인 내레이션을 할 때보다 목이 더 빨리 쉰다고 한다.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상을 낯설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시청자는 프로그램의 남녀탐구에 함께 동참하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인간, 즉 우리 자신을 탐구해서 그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에 한국인이 열광한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이야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헐리우드처럼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 기가 질리는 스펙터클을 만들지 못할 바에야, 한국처럼 저예산으로 승부를 봐야 나라는 역시 ‘인간’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을 때, ‘남녀탐구생활’과 같은 대박이 가능한 것이다.
<개그콘서트>가 개그 프로그램들 중에서 독주하는 이유도 이것과 같다. 바로 탐구의 힘이 작용한 것이다. 관찰이 예리하고, 그것을 표현한 것이 보는 이가 공감하며 박수를 칠 만큼 정확하다는 데에 두 프로그램 사이에 차이가 없다. 사회과학 보고서가 아니므로 건조하지 않게 코미디적 과장을 섞어 촌철살인으로, 동시에 매우 적나라하게 우리 마음의 속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두 프로그램이 같다.
‘남녀탐구생활’이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은 이런 것들이다. 10대 여자의 이상형은 춤 잘 추는 학교 오빠, 20 여자의 이상형은 명문대생 오빠, 30대 여자의 이상형은 돈 많고 차 있는 남자, 40대 여자의 이상형은 TV 드라마 속 주인공, 50대 여자의 이상형은 자기 아들(그래서 아들 여자 친구가 얄미워)라고 한다.
반면에 10대 남자의 이상형 ‘예쁜 여자예요’, 20대 남자의 이상형 ‘예쁜 여자예요’, 30대 남자의 이상형 ‘예쁜 여자예요’, 40대 남자의 이상형 ‘예쁜 여자예요’, 50대 남자의 이상형 ‘예쁜 여자예요’, 60대 남자의 이상형 ‘예쁜 여자예요’라고 한다. 시청자는 이런 내레이션을 들으며 박장대소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려지는 남녀는 철저히 속물들이다. 대체로 남성은 ‘무신경 밝힘증 진상’으로, 여성은 ‘결벽증 허영병 된장’으로 그려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냉소적인 관찰이 더욱 웃기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굳이 우려를 제기하자면, 실제로 현실의 한 단면이라도 TV가 너무 과장되게 표현하면 편견을 강화하거나 대상을 비하하는 것이 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경우 명품 쇼핑에 열중하며, 비싼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고급스러운 악세서리와 함께 직장 명찰을 달고 강남거리를 활보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격심한 ‘된장녀 혐오증’을 강화할 수 있다. 20대 여성의 관심사가 ‘옷, 화장품, 명품, 그리고 그것들을 사주는 남자’로 표현된 것도 그렇다고 하겠다.
이에 따라 여성계 쪽에서 이 프로그램에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도 있다고 기자에게 들었다. 하지만 ‘남녀탐구생활’의 경우엔 남녀가 모두 속물로 그려지므로 여성만을 차별한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저 우리 모두의 속물적인 면모를 과장되게 그려주는 프로그램 정도로 보면 좋겠다.
어쨌든 ‘남녀탐구생활’은 케이블TV에 혜성처럼 나타나 역사를 새로 쓴 탐구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매체의 약점도, 제작비의 한계도, 스타의 부재도 탐구폭탄의 위력 앞에는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다.
'예능 음악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호동의 한계가 드러나다? (49) | 2010.01.18 |
---|---|
무한도전이 미쳤다! 또하나의 금자탑 (105) | 2010.01.17 |
무한도전 박명수, 대박의 주인공 되다 (16) | 2010.01.10 |
패떴, 이효리는 영리했다 (126) | 2010.01.10 |
징징 현아 섹시, 쩌리에서 대반전 (23) | 2010.01.06 |
개그콘서트 크리스마스로 빵 터뜨리다 (1) | 2009.12.25 |
강심장, 김장훈의 애국적 쾌거 (15) | 2009.12.24 |
애프터스쿨 1위, B급섹시 설움 벗나 (24) | 2009.12.21 |
무한도전의 제동왕자 재롱잔치 좋았던 이유 (7) | 2009.12.20 |
웃찾사 남자는몰라, 여자의 된장끼를 알려주마? (15) | 200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