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어처구니없는 뉴스가 또 터졌네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한 KBS 김인규 사장에게 "요즘 KBS의 어느 오락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저는 < 개콘 > 을 좋아해서 즐겨보는데, 한 코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면서 박성광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대사를 콕 찍어 " < 개콘 > 을 보면서 가장 찝찝한 부분"이라고 했다네요.
이어 "어떻게 김 사장이 취임했는데도 이 프로그램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김인규 사장은 "나는 잘 못 봐서 모르겠다, 심의팀이 알아서 하도록 전하겠다"라 답했고, 한선교 의원은 재차 "그 대사만 없으면 더 재밌을 텐데 아이랑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정말 미치겠네요. 문제가 된 코너의 제목은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인데, 진짜 술 푸게 만드는 소식입니다. 이젠 별것까지 다 통제하려고 하는군요.
국회의원이 개그프로그램을 보다가 기분 나쁜 대사가 나왔다고 방송사 사장에게 그 개그맨 입 막으라고 채근하는 모습, 이거 정말 술 푸게 만드는 광경 아닙니까?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는 서민들의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준 통쾌한 대사로 <개그 콘서트> 성공의 1등 공신이었습니다. <개그 콘서트>는 이렇게 사람들의 속을 후련하게 하는 사회풍자로 성공시대를 이어갔습니다. 다른 말로는 ‘공감 코드’라고 하지요.
경쟁 프로그램들엔 이런 속 시원한 공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공감을 주는 것이 누군가의 눈엔 참 못마땅했던 같습니다. 애초에 서민들과 공감할 수 없는 분들이기 때문인가요?
‘동형이형’이 문제되더니 결국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까지 문제가 되는군요. 이렇게 되면 해당 개그맨은 퇴출되거나, 알아서 몸을 사리게 될 겁니다. 서민의 속을 뻥 뚫어주는 통쾌한 풍자보다 말장난에나 치중하게 되겠지요.
우리나라 코미디는 선진국에 비해 수준이 낮다고 비난 받습니다. 선진국은 높은 수준의 비판과 풍자를 보여주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저질 몸개그 말장난이나 한다는 겁니다. 요즘 <개그 콘서트>는 모처럼 공감과 풍자로 당대와 호흡하는 수준 높은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칭찬해도 모자랄 판에, ‘찝찝’하다니. 정말 국민을 찝찝하게 만드네요.
한국사회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라는 건 아이들도 아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1등 하겠다고 자살기도까지 해가며 공부를 하는 것이죠. 1등만 기억하지 않는 서북부 유럽에선 입시경쟁 따위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1등을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인간답게 살기가 힘드니까요. 민생파탄이니, 양극화니 하는 말들은 모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복잡한 사회과학도 필요없고, 그저 신문만 열심히 읽어도 알 수 있는 일들입니다.
정치인이라면 이런 황폐한 사회를 보다 따뜻한 사회로 바꾸기 위해 고심해야죠. TV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채찍질로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찝찝하다’며 TV에 재갈을 물리려 하다니. 우리 사회를 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풍자와 웃음은 서민이 세상에서 겪은 좌절과 상처를 그나마 씻을 수 있는 작은 탈출구입니다. 높으신 분께서 보시기엔 이게 그렇게 불온했나요? 서민들 손에서 이것마저 앗아가야 속이 시원한가요?
코미디가 세상을 풍자할 때, 당연히 서민의 울분을 풀어주며 힘 있고 돈 있는 계층을 웃음거리로 만들게 됩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입니다. 이때 권력층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선진형 개방사회인가, 후진형 폐쇄사회인가가 결정됩니다. 그런 풍자에 권력층이 서민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사회는 선진국이고, 권력층이 분노하며 풍자를 억압하는 사회는 후진국입니다.
이렇게 뻔한 사실을 우리 정치인은 모르는 것일까요? 박성광의 개그마저 국회의원과 방송사 사장님의 공식 문답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답답하고, 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네요. ‘선진문화창조’는 헛된 꿈일 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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