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그콘서트>가 동네북이 됐습니다. 먼저 '동혁이형'이 보수단체에게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한 선동적 개그’라며 ‘국민을 천민 혹은 폭민화’할 우려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죠.
그다음엔 박성광의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집권 여당의 한선교 의원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를 거론하며 '< 개콘 > 을 보면서 가장 찝찝한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한 의원은 또, '어떻게 김 사장이 취임했는데도 이 프로그램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을 경악케 했습니다. 이 얘긴 방송사 사장이 개그프로그램 대사를 하나하나 체크해서 검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로 들려서 정말 황당했죠.
<개그콘서트>에 찬바람이 엄습하고 있습니다. 대사 한 마디 마음대로 못하겠네요. 도대체 <개그콘서트>가 뭐길래 이렇게 '그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요? 왜 <개그콘서트>는 힘 있는 분들로부터 얻어맞는 걸까요?
- <개그콘서트>가 인기있는 이유 -
이 문제는 <개그콘서트>가 왜 인기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다른 개그프로그램들은 바닥인데 유독 <개그콘서트>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에 썼던 것처럼 <개그콘서트>에만 현실과 공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그콘서트>는 말장난이나 4차원 개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서민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동혁이형이 샤우팅을 할 때, 박성광이 울분을 토할 때 빵빵 터졌던 것이지요.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서민의 울분을 풀어주려니 당연히 사회부조리를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선 서민의 아픔을 얘기할 수밖에 없죠.
어떤 지배층은 서민들이 이런 얘기를 하며 박장대소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뭔가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고, 질서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요.
모든 지배층이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어떤 지배층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기도 합니다. 주로 선진 시민사회의 엘리트들이 이렇게 열린 태도를 보여주지요. 반면에 봉건사회나 후진국의 권위주의적 지배층은 이런 웃음을 아주 싫어합니다.
<개그콘서트>의 서민공감형 개그들이 얻어맞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선진 시민사회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웃음을 만들어내는 표현을 완전히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죠.
- 웃음의 불온한 속성 -
웃음은 그 근본적인 속성상 권위적인 통제와 어울리지 못합니다. 웃음은 근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흔드는 수류탄과 같습니다. 웃어대는 사람들을 통제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 경박한 웃음이 관리대상이 됐던 것입니다.
또, 위에 언급했듯이 다수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웃음은 당연히 서민의 코드와 맞아야 합니다. 상위 1% 코드로는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웃음의 대중성이 강화될 수록 '그분'들과는 멀어지는 것이죠.
서민의 울화를 통쾌하게 풀어주는 것은 현실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풍자입니다. 또, 평소에 서민이 꼼짝도 할 수 없는 힘 있는 대상의 희화화, 조롱도 서민을 웃게 합니다. 이래서 전통 희극이 귀족이나 양반을 웃음거리로 삼았던 겁니다.
웃음엔 뒷담화의 성격도 있습니다. 우리 서민들은 퇴근 후 술 한 잔하면서 관리자의 뒷담화를 하고, 오너와 경영자, 더 나아가 정치권력자의 뒷담화를 합니다. 그때 긴장이 풀리며 웃음이 발생하죠.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뒷담화는 웃음을 만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훈시는 울화를 만듭니다. 개그프로그램은 뒷담화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웃음이란 것의 숙명입니다.
- 불편해도 안을 수 있는 대범함 -
사원이 자신을 희화화하며 뒷담화를 하고, 놀이를 즐겨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경영자가 진정한 리더입니다. 사원들에게 화를 내며 말조심하라고 정색하는 사람은 바람직한 지도자가 아니죠.
우리는 상식적으로 권력자가 서민의 웃음을 포용하는 것이 선진사회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된 세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로 '대통령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라는 표현이 나온 겁니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이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그분'들께서 인내심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개그프로그램에 정색을 하고 화를 내내요. 상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선 중세의 통제체제를 지키기 위해 웃음을 지우려는 수도사가 등장합니다. 그는 웃음이 근엄한 중세를 무너뜨릴까 우려해 살인까지 불사합니다. 그는 웃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신이 필요 없게 된다고까지 말했죠. 움베르토 에코는 그 수도사를 중세의 암흑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렸습니다.
<개그 콘서트>가 동네북이 되는 것을 보며 그 작품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왜 21세기에 암흑기를 떠올려야 하나요? 서민이 통쾌하게 박장대소하는 것 정도는 그냥 둬도 될 텐데, 왜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막으려 하나요?
지금처럼 TV 속의 웃음을 사냥해간다면 개그프로그램엔 말장난과 몸개그만 남을 겁니다. 그러면 한국 코미디는 10년 이상 후퇴하고, 진짜 웃음이 유비통신이나 은어 시리즈, 화장실 낙서에서만 터져 나왔던 '그때 그 시절 암흑기'로 돌아가게 되겠죠.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을 지도하는 분들은 대중적인 웃음이 근본적으로 서민의 코드이며, 권위주의적 질서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안 그러면 우리 사회는 후세가 비웃을 퇴행기에 접어들지 모릅니다. 아무리 불편하고 '찝찝해도' 그것 때문에 국민이 '폭민'이 될 거라는 <장미의 이름> 수도사 같은 걱정일랑 내려놔야 합니다. 찝찝한 웃음을 인정하고 그것과 공존하는 대범한 지도층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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