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 2대1로 패배했다. 수비 조직력 문제와 함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문제가 다시 도졌다. 일본팀이 부러워한 것이 한국팀의 골 결정력이었는데, 우루과이전에선 결정적인 순간에 슈팅을 날리지 못하거나 날려도 2%가 부족했다. 이동국 선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팀이 전반적으로 다 그랬다.
특히 한국팀은 운이 너무 없었다. 전반에 골대를 맞고 튕겨나간 골이 한국팀의 불운을 상징했다. 일본은 덴마크전에서 비슷한 상황에서 연속해서 골을 넣는 ‘억세게 좋은 운’을 과시했었다. 자고로 운 좋은 장수를 이길 군대는 없다고 했다. 불운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심판도 마치 우루과이 선수 같았다. 우루과이 선수들의 파울은 잘 지적하지 않았고, 카드도 꺼내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에게만 3개의 옐로우 카드를 남발했다. 심판의 이런 태도는 한국 선수의 플레이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만약 우루과이 선수들에게도 카드가 주어지고, 우루과이 진영 내에서 프리킥이 좀 더 많았다면 게임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분전했다. 게임을 상당부분 지배하기도 했다. ESPN은 한국이 우루과이보다 나은 경기를 펼쳤다고 했다. 우루과이팀의 감독도 한국팀을 높이 평가했으며 우루과이이 몇몇 선수들도 한국팀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패배가 안타깝다. 승리의 여신은 한국팀을 외면했다. 역시 세상은 냉정하다. 막판에 이르러 우리 선수들은 체력이 거의 바닥난 것 같았다. 평범한 땅볼이 앞에 굴러오는데 그것을 받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모습까지 나왔다. 이때가 가장 안타까웠다.
그런 공조차 받아내지 못한다는 건 심신의 에너지를 모두 써버렸다는 뜻이리라. 그렇게 처절하게 뛰는 모습도 안타깝고, 그런 선수들에게 너무나 냉정한 현실도 안타까웠다.
그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그렇게 심신의 에너지를 모두 써버릴 정도로 자신의 일에 몰두해본 적이 있나? 적어도 난 그런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숭고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무한도전>에서 한일 여자 권투 시합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때 스파링을 보던 <무한도전> 멤버들은 처음엔 장난을 치다가 점점 엄숙해졌다. 최선을 다 하는 선수의 모습이 너무나 숭고했기 때문이다.
권투 시합 당일날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 부으며 최선을 다 하는 두 선수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모두 감동했다. 이미 승패는 문제가 아니었다. 두 선수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승자였다.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영화 <킹콩을 들다>에서도 최선을 다 하는 삶은 그 자체로 금메달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무한도전>은 승패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위대한 두 인간의 혈투, 그 숭고한 감동만을 전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모습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평범한 땅볼조차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쏟아 부은 선수들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면서 동시에 위대해보였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최선을 다 해도 승리하는 건 아니라는 현실의 냉정함도 다시금 생각게 했다. 그렇다. 그게 세상이다. 세상은 노력한 만큼 성과를 돌려줄 정도로 합리적이지 않다. 최선을 다 했는데도, 잘 했는데도 결과적으로 좌절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현실은 비극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치열하게 부딪힌다. 최선을 다해 살아낸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무릎 꿇지 않는 인간의 의지. 그것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이런 치열한 의지는 전율할 만큼 감동적인 법이다. 결국 희망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런 ‘의지’다.
우루과이전에서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그런 의지를 느꼈고, 그것은 나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했다. 차두리의 눈물에선 세상의 냉혹함과 비극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내일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다.
만화가 조석은 말했다. ‘까임의 정상에 두 개의 옥좌는 없다’고. 그 옥좌에 허정무 감독, 박주영, 오범석 선수가 있었고 이젠 이동국 선수가 앉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돌아가면서 사람을 까고 원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그들의 흠을 잡아내는 것에 열중하는 것은 아쉬운 관전법이다. 그보다는 그들의 치열한 도전을 인정하고, 우리도 그런 정도의 치열함으로 살아낼 계기로 삼는 것이 좋겠다.
한국 대표팀에게 닥친 냉정한 불운, 골문 앞에서의 실수 등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닥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들에게 화풀이하기 보다는 그런 현실의 비극성에 겸허히 옷깃을 여미고, 그런 일을 당한 선수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 어떨까? 사회에 그런 풍토가 조성되면 나에게 불운이 닥치거나 내가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해도 누군가가 나를 감싸 안아 줄 것이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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