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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애란 백세인생 전해라에 꽂힌 까닭

 

25년 무명가수 이애란이 백세인생으로 떴다. 90년에 데뷔한 후 전통시장, 회갑잔치, 동네 체육대회 등의 행사를 전전하며 활동했으나 이젠 CF를 몇 편씩 찍는 스타가 됐다. 노래 가사 중에 ‘~에게 전해라라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전해라패러디가 연말을 강타하고 있다.

 

부장님이 회식한다고? 못 간다고 전해라~’, ‘시어머님이 김장하라고 부른다고? 못 간다고 전해라~’, ‘친구들하고 노는데 집에서 부른다고? 못 간다고 전해라~’, ‘삼촌한테 터닝메카드 장난감 사달라고 전해라~’, 이런 식의 패러디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정서에 민감한 정치권도 전해라패러디를 쏟아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근 온라인 당원가입 캠페인을 당원가입? 5분이면 된다 전해라라고 홍보했다. 정청래 등의 의원들도 입당하라 전해라라는 입당독려 짤방’(이미지)를 선보혔다. 새누리당은 백세인생을 아예 총선 로고송으로 검토했다.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 백세인생을 거론한 후 이 노래를 모르는 의원들에게 서청원 최고위원이 인기곡이라고 설명하고 김무성 대표는 이런 노래도 모르는 비서진은 다 교체해야 한다는 농담까지 했다고 한다.

 

친박계의 물갈이 공세에 직면한 유승민계의 심정이라며 내년 2월 공심위에서 날 낙천하러 오거든 아직은 초선이라 못간다고 전해라, 대구 초선 여론몰이로 날 데리러 오거든 말하는 니놈이 물갈이 대상이라 전해라라는 패러디도 여의도에 회자된다. ‘월급 매달 100만원씩 내놓으라며 삥 뜯거든 우리 아이 아직 중딩 고딩이라 전해라, 공휴일 새벽 안가리고 전화 문자 해대거든 야 이놈아 너는 잠도 없냐 전해라’, 이건 국회의원 갑질에 시달리는 보좌관의 심정이라는 패러디다.

 

 

이애란의 백세인생이 갑자기 뜬 건 재미있기 때문이다. ‘전해라라는 화법이 웃겼던 것이다. 원래 가사에서 전해라는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라, 나이 먹어 저세상에서 저승사자가 잘 데리러 오거든 아직 젊어서 못 간다고 염라대왕에게 전하라는, 노년층의 심정을 진솔하게 대변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젊은 네티즌에겐 밑도 끝도 없이 전해라라고 하는 화법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허공에 대고 마치 보좌진에게 명령하듯이 전해라라고 허세를 부리는 게 웃겼던 것이다.

 

 

그것을 한 실용음악 전공 학생이 이미지로 만들어 공유했더니 인터넷에서 터졌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이미지를 짤방이라고 한다. 짤방을 활용한 패러디 유희가 네티즌 문화의 대세다. 김보성 으리신드롬도 이러한 짤방문화에서 탄생했다. 이애란 신드롬도 그 흐름 속에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순간적으로 재미를 주는 짤방 떡밥들이 인터넷을 달굴 것이다. 인터넷 초창기엔 유명 짤방들이 그저 인터넷 안에서 화제가 되는 데에 그쳤지만, 이애란 사태는 이제 짤방이 지상파를 뒤흔들 정도로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걸 말해준다.

 

 

전해라라는 표현은 또, 막연한 소망이나 상실감, 답답함 등을 하소연할 수 있게 해준다. 이성교제를 못하고 있다거나, 일이 힘들다거나 할 때 딱히 누구를 콕 찝어 하소연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엔 속풀이를 하고 싶을 때, 허공에 대고 크리스마스지만 난 아직 솔로라고 전해라라고 한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전해라화법이 인기를 끈 또다른 이유는 한국사회의 답답함에 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허공에 대고 전해라라고 하면 왠지 속생각을 부담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어머니께 전해라’, ‘부장님께 전해라’, ‘의원님에게 전해라등 평소 면전에선 못하던 얘기도 기탄없이 토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해라라는 말을 빌어 자기 심정을 패러디하는 유희가 열풍을 일으킨 배경엔, 갑 앞에서 자기 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는 을들의 울화가 깔려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