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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북한 열병식, 관절은 누가 책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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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보다 더 큰 규모로 열병식을 하겠다며 객기를 부리던 북한이 결국 초대형 열병식을 치르고 말았다. 김정은은 행진하는 군인들을 보며 대단히 흡족한 듯 연신 웃음을 지었다. 막대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외교관들에게 외화를 조달하라며 압박한 것으로도 모자라 주민들 돈도 상당액을 징수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국력을 기울여, 사력을 다해 열병식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거대 이벤트를 치르는 것은, 이런 행사가 자신들에게 득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 행사로 대내외적 과시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거대한 것을 보면 경탄한다. 거대한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권력자들은 대중이 그러한 행사를 보며 느끼는 경탄이 결국 자신에 대한 충성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 행사의 압도적인 거대함이 바로 자신의 권력의 크기를 상징한다고 믿는다 

 

 

북한은 최근 사면초가에 빠졌다. 전통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서방세계뿐만 아니라 중국까지도 북한에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도 최근 고도성장 기조가 흔들리면서 위기에 빠졌다. 그렇기 때문에 두 나라가 더욱 열병식 같은 거대 이벤트에 몰입했을 것이다. 주민들이 거대한 행사를 보며 국가의 강성함을 실감하고, 자신이 그 국가의 일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되어 체제안정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대하고 일사불란한 행사를 통해 위대함을 과시하는 흐름의 현대적 원조는 프로이센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이 군국주의적으로 발전하면서 이른바 거위걸음이라는 행진법이 탄생했다. 히틀러의 나찌가 이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형 이벤트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스타디움에서 거대한 전당대회나, 올림픽을 성대하게 개최하면서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했다.

 

발터 벤야민은 이런 흐름을 정치의 심미화라고 표현했는데, 위대한 예술작품을 숭배하면서 심취하는 원리로 정치적 의도가 깔린 행사를 거대하게 형상화해 대중의 경배를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이러한 나찌의 전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전체주의 국가들이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소련, 중국, 그리고 북한 등이다.

 

 

그 전략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거대한 하나가 되는 행진이다. 그 행진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발걸음이 아니라 발을 비정상적으로 힘차게 차올리는 거위걸음으로 이루어진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발을 차올리는 각도가 많이 낮아졌다. 중국은 60도 정도로 차올린다. 반면에 북한은 거의 90도에 가깝게 차올린다. 인간의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6개월 이상의 고된 훈련을 한다. 발을 최대한 차올리는 행진을 하다보면 몸 전체가 출렁출렁 움직이는데, 그 동작을 반복할 경우 장이 꼬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북한의 열병식이 이루어졌다. 김정은은 그 모습을 보고 대단히 흡족한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문화적 감각으론 그런 광경이 멋있어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멋있다기보다 저게 뭐하는 짓이냐는 느낌이 앞선다. 특히 행진하는 군인들을 볼 때면 저 관절 다 망가질 텐데 누가 책임지나라고 걱정하게 된다. 남과 북의 문화적 감각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자랑스럽게 치러낸 행사인데 우리가 보기엔 하나도 멋있지 않다. 

 

인간에 대한 생각, 개인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을 전체에 속한 부속품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거위걸음 행진이 나찌 이래 전체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각광받은 것이다. 개인 인권과 자율성을 무시할수록 전체성이 더 강해지고, 차올리는 발의 각도가 커진다. 북한 행진에서 발이 가장 높이 올라간다는 건 북한이 인권을 가장 무시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개인의 인권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서구 선진국들도 거대 행사로 자신들을 과시하기는 한다. 영국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자신들을 과시하는 장으로 삼았었는데, 그때 등장한 것은 집단행사가 아닌 록밴드였다. 심지어 여왕을 조롱해 한때 금지곡으로 규정했던 노래까지 개막식에 등장시켰다.

 

한국은 북한과 서구, 그 사이 지점에 서있다. 북한에 비한다면야 비교도 안 될 만큼 자유로운 나라이지만, 아직도 서구선진국만큼의 자유분방한 시민사회에는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거대한 것으로 과시하고 집단총화를 강요하는 흐름도 사회저변에 남아있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몫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