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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성추행 의인이 꽃뱀으로 몰린 이유

 

호식이두마리치킨의 최호식 전 회장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던 피해자를 구해준 여성들이 네티즌에게 꽃뱀으로 몰려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해당 여성이 자신들을 꽃뱀 사기단 등으로 매도한 A4 용지 100장 분량의 악플 캡처본을 들고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이 고소 접수를 안 받아줬다고 해서 또 공분이 일었다. 악플이 대상자를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 여성은 선의로 절박한 피해자를 도와드린 것뿐인데 욕을 먹고 악플을 받는 것이 어이가 없다 ... 이런 식이면 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겠냐고 항변했다. 

네티즌이 성범죄 피해자와 그를 도운 시민을 덮어놓고 의심한 황당한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성범죄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1차적으로 피해자 여성을 의심한다. 피해자가 술을 먹었는지, 노출이 심한 옷차림은 아닌지, 먼저 유혹한 건 아닌지, 서로 좋다고 했으면서 말을 바꾼 건 아닌지 등등이다. 

여성차별이 심각한 중동 등에선 성범죄 피해자 여성이 오히려 품행이 조신하지 않았다며 질타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종종 해외뉴스로 전해진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80년대만 해도 강제추행을 당한 주부가, 술을 먹은 채 밤길을 걸었고 결혼 전에 유흥업소에서 일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성범죄 사건이 벌어졌는데, 피해 여성이 정말 순수한 피해자가 맞는지를 추궁하는 데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은 80년대와 같은 황당한 재판은 없지만, 여전히 성범죄의 원인이 피해자의 품행이라는 식의 담론이 횡행한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21세기 들어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이런 보수성이 더 강화된다는 게 황당한 일이다. ‘일베가 바로 그런 흐름을 상징한다. 상징이라고 한 것은, 일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터넷 문화 전반에서 보수적 경향이 나타나는데 일베가 그것을 대표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보수는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지정당과 상관없이 문화적 보수화가 일어난다는 것인데, 특히 여성문제에서 그것이 뚜렷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혐오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 성추행 피해자를 도운 의인 여성이 오히려 매도당한 것도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네티즌 문화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또 하나, 작년에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던 연예인 성추문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박유천, 이진욱, 유상무, 엄태웅, 이민기 등으로부터 성폭행 또는 성폭행 시도를 당했다는 여성들이 줄줄이 나타나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모두 사실무근으로 밝혀져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해당 사건들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모든 네티즌이 연예인을 탓했고, 방송에 출연하는 경찰이나 검찰 출신 패널들조차 연예인의 성폭행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랬던 사건이 뒤집힌 것이 대중의 사고방식을 크게 흔들었다. 유명인을 상대로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났을 때 일단 그 여성을 의심하는 기류가 형성된 것이다 

연예인 사건에선 언제나 해당 여성을 돕는 조력자들이 있었다. 이번 최호식 전 회장 사건에서도 여성들이 현장에서 바로 나타나 피해자를 돕는 모습이 비쳐지자 혹시 조력자들과 짠 거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결국 피해자와 의인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결국 성범죄 무고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구도다. 엄태웅을 협박했던 여성과 업주는 각각 징역 26개월과 집행유예를 받았다. 사람 인생을 망쳐놓은 데 대한 형벌치곤 가볍다는 느낌이다. 무고 관련자들을 아주 엄중하게 처벌해서 그런 사람들이 나오지 않게 해야, 대중이 피해자 측부터 의심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