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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염력, 진짜 한국형 히어로가 탄생하다

 

한국형 히어로라는 타이틀을 단 작품들은 조금 있었지만 김과장처럼 대부분 현실적인 인물이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 액션을 한다고 해도 주먹 액션 정도여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헐리우드 히어로물하고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염력에선 드디어 하늘을 나는 영웅이 등장한다. 엑스맨 수준의 초능력을 보유했다. 스파이더맨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영상물에서 처음 등장한 본격 히어로물이다.(아동극 제외

주인공이 염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의 초능력 액션은 기대했지만, 스크린에 펼쳐진 것은 기대 이상이다. 상당히 허황된’, 그래서 이런 종류의 액션을 원하는 관객을 만족시켜주는 액션장면이 등장한다. 과거 소오강호가 등장했을 때 허황된 액션에 환호했던 것과 비슷하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에 이어 액션 연출에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흥미진진한 액션으로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상영시간이 짧은 편이다. 2시간 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요즘 1시간 4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긴 시간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끝날 때 약간 당황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짧은 시간 강하게 치고 깔끔하게 끝나는 것은 가벼운 상업영화로선 미덕이다. 그야말로 팝콘 무비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가볍지 않다. 철거민들의 이야기가 배경이고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등장한다. 그것이 가벼운 오락영화 분위기와 충돌한다. 오락영화치고 사회적인 배경까지 다뤄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오락영화에 무거운 사건을 다루는 바람에 양쪽 다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보기 나름이다.

 

어쨌든 그런 배경을 선택했기 때문에 한국형 히어로물이다. 우리만의 사회적 맥락을 놓치지 않았다. 주인공이 극히 평범한 소시민 아버지인 것도 한국형의 특징이다. 류승룡은 평범한 아버지로 보이기 위해 살을 더 찌웠다고 한다

부성애 설정은 연상호 감독의 전작인 부산행을 비롯해 한국 영화에 넘쳐나는 코드다. 정유미가 보여주는 막가파 재벌임원은 베테랑무개념 재벌2세의 또다른 버전 같기도 하다. 별로 새롭진 않다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그렇게 치밀하지도, 배우들의 연기가 부각되지도, 눈물이 흐르는 감동을 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코미디 영화라는데 웃음도 많이 주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액션이 기대 이상이기 때문에 1시간 40분 짜리 상업영화로서는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

철거민, 용역, 경찰이 충돌하는 그 순간에 히어로가 있었다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 비극적인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까? 철거민뿐만 아니라 철거민을 진압하는 사람들도 어차피 갑에게 내몰린 을의 인생들이다. 을과 을이 갑의 이익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싸우는 것이다. 그곳에 히어로가 나타나면 뭔가가 달라질까? 황당무계한 히어로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현실에선 희망이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하는 것도 영화의 미덕이다.

 

히어로의 활약을 보는 순간엔 통쾌하지만 보고 나면 헛헛해진다. 현실엔 그런 히어로가 없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히어로물은 위기 상황 자체가 황당하기 때문에 초능력 히어로가 악당을 물리치는 걸 즐긴 후에도 헛헛함이 아닌 개운함이 남는다. 반면에 한국형 히어로물 염력은 한국사회에 실재하는 문제가 위기상황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초능력으로 위기를 해결해도 헛헛함이 남는다. 현실적 희망을 전해주지 않는, 그저 볼 때만 통쾌한 액션 영화. 진짜 팝콘형 상업 오락 히어로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