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한 장이 넘어간다. MBC '무한도전‘이 3월을 마지막으로 종영하는 것이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올 가을 이후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현재의 ’무한도전‘ 모습 그대로 돌아올 것인지는 그때가 돼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종영한다고 봐야 한다. ’무한도전‘의 종영은 한국 예능계의 일대 사건이다.
‘무한도전’은 단순히 인기 예능프로그램들 중의 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새 흐름을 열고 한 시대를 대표했던 역사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능은 ‘무한도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무한도전’ 이전의 예능은 스타 게스트에 의존하면서 미리 짜인 대본에 의해 정돈된 내용으로 흘러가는 전통적인 형식이었다. ‘무한도전’이 ‘리얼’이라는 폭탄을 터뜨렸다. 리얼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였다. 리얼이 시작된 이후 과거식 예능은 사라졌다. ‘무한도전’이 예능에서 21세기를 열었던 것이다.
‘무한도전’은 리얼버라이어티라고 불렸다. 어느 정도 설정은 미리 제시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멤버들의 임기응변에 의해 실제상황으로 전개된다. ‘무한도전’의 리얼함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좀비 특집이었다.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대규모 특집을 기획했는데 박명수의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여느 프로그램이라면 ‘NG'를 내고 다시 찍었겠지만 ’무한도전‘은 돌발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특집을 끝내버렸다. 이런 일을 거치면서 시청자들에겐 ’무한도전‘에서 보이는 것이 실제상황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더 흥미진진하게 몰입하게 됐다. 그런 흐름이 다른 ’구식‘ 예능엔 재앙이었다.
‘무한도전’이 판을 바꾸자 다른 방송사도 새 흐름에 동참했다. KBS '1박2일‘, SBS '패밀리가 떴다’ 등이 ‘무한도전’에 응전하며 리얼버라이어티 주말 3파전이 전개됐다. 이 세 프로그램이 모두 국민 예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구가했다. 한때 방송 3사 예능대상이 모두 이 세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주말엔 세 프로그램을 각각 지지하는 네티즌들의 설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 시대가 이제 완전히 막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남은 ‘1박2일’이 중장년층의 지지로 순항하고는 있지만 트렌드의 중심에선 벗어난 상태다.
‘무한도전’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단지 한 시대 예능 트렌드를 선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엔 예능에선 아주 희귀한 ‘사회성’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식목일 특집으로 욕심쟁이 박명수가 멤버들의 물을 빼앗아 독식하는 상황극을 내보냈는데, 그 안에 대자본의 수자원 독점을 풍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 나중에서야 드러난 적이 있다. 이런 사회적 의미로 인해 이 프로그램은 ‘존경 받는 예능’의 반열에 올랐다. 흥미진진한 추격전을 비롯해 다양한 특집으로 예능의 본령이라고 할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평균 이하 멤버들의 분투에 젊은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하면서 보기 드문 프로그램 팬덤이 발생하기도 했다. 팬덤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출연자들이 팬덤의 눈치를 보는 일까지 생겼다. 노홍철과 정형돈이 엄청난 관심에 부담을 느껴 프로그램에서 빠졌다. 그럴 정도로 ‘무한도전’에 쏟아진 관심과 사랑이 대단했다. 시청자와 한 시대를 살아낸 예능. 이런 프로그램이 또 나타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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