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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조현민, 별장성접대, 영상계에 자괴감 주다

 

재벌 갑질은 드라마 단골 소재다. 특히 재벌 사모님의 안하무인격 행태는 주말드라마에서 수시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황금빛 내 인생에서도 아랫사람에게 고압적으로 행동하다가 뒤통수 맞는 사모님이 등장했었다. 

보통은 사람을 차갑게 바라보고, 멸시하는 정도로 묘사된다. 아들의 여자에게 돈봉투를 내민다든지 물을 뿌리거나 뺨 때리는 모습도 있다. 백화점 점원을 무릎 꿇린 사모님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된 후론 아랫사람을 무릎 꿇리는 모습도 종종 나온다. 서비스를 제대로 못하는 점원에게 히스테릭하게 짜증내는 재벌2세도 등장한다. 이 정도가 드라마계가 상상하는 재벌가 사모님 또는 공주님의 갑질이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사건에선, 놀라운 음성파일이 등장했다. 막말을 하며 분을 못 참아 소리를 지르는 내용이다. 제보자는 이 같은 고성, 폭언이 일상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이유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재벌2세는 드라마에 나왔지만 일상적으로 소리 지르는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었다. 보통 재벌가는 갑질할 때 하더라도 최상류층으로서의 품위는 지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무차별적으로 소리 지르는 행태는 주로 시장통에서 악다구니 쓰는 서민 캐릭터에 나타난다. 조현민 사건에선 그런 드라마의 선을 뛰어넘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이다.

본인보다 훨씬 나이 많은 간부급 직원들에게 반발로 질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드라마에서 백화점 점원 등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 반말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나이 많은 회사 동료에게 반말하는 재벌 딸 캐릭터는 없었다. 이것도 선을 넘었다. 

조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씨에 대한 주장도 나왔다. 접시를 집어던졌다든가, 욕설하며 크게 소리 질렀다는 내용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재벌 사모님은 남들 앞에서 품위를 지키려 노력하는 위선적인 존재로 드라마에서 그려진다. 그런 품위 자체를 내려놓은 최상류층 사모님은 드라마에선 없었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정도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영화 내부자들에선 최상류층 남성들이 단체로 옷을 모두 벗고 여성들과 술자리를 벌이는 광경이 묘사됐다. 상류층 남성들이 설마 그렇게까지 추잡하게 행동할 거라고는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장면은 상류층의 일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우화로 인식됐다. 

그런데 최근 다시 화제가 된 별장 성접대 사건에선 거실에서 상류층으로 추정되는 남성들과 여성 여러 명이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거나, 성관계를 하는(!) 사진이 나왔다. 이 모든 행위들이 동시에 한 장소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여성과 노래하다 성관계하는 동영상도 나왔다. ‘내부자들의 묘사를 훨씬 뛰어넘는다. ‘내부자들에선 옷 벗고 술자리까지만 집단적으로 한 후, 성관계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은밀하게 진행했다. 거실에서 공공연하게 성관계까지 하는 상류층의 모습은 어떤 문화콘텐츠에도 나오지 않았다.

 

현실이 드라마, 영화의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다. 그 상상력 넘치는 수많은 작가들이 아무리 상상해도 닿을 수 없는 지점까지 현실이 가버렸다. 이것이 최근 재벌 갑질 사건, 다시 조명된 별장 성접대 사건이 말해주는 바다. 지금 가장 충격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작가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린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상상했을까?’ 자탄에 빠져 있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의 상류층이 영상업계에 자괴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