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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조장풍, 갑질사회가 호출한 민생 히어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1113, 전태일이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몸을 불사르며 외친 말이다. 특별한 혜택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법률로 명시된 권리를 지켜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한국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상징하는 외침이었다.

그 외침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바로 MBC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다. 주인공 조진갑(일명 조장풍, 김동욱 분)은 유도선수 출신의 교사였는데 학교 이사장 아들에게 폭행당한 피해학생을 지켜주다가 교직을 잃는다. 다시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조용한 철밥통직업을 찾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보니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되고 말았다. 복지부동이 목표였지만 근로감독관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결국 다시 분쟁에 휘말라고 만다.

 

을의 당연한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현장, 을에게 부당한 갑질을 하는 갑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은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독하는 공무원이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사법경찰의 임무까지 수행한다. 압수수색도 하고 위반 업주를 수갑 채워 체포까지 할 수 있다. 조진갑이 이런 사법경찰의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리다보니 우리 사회 노동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처음엔 10대의 아르바이트비를 착복하고도 당당하게 폭언까지 일삼는 사장 이야기로 시작해서, 운전기사들의 월급을 상습적으로 체불하고 살인적인 초과근무까지 시키는 악덕 운수회사 사례로 이어졌다. 여기선 바지사장을 내세워 실소유주가 법적 책임을 피하는 구조도 그려졌다. 근로감독관에게 적발되면 바지사장이 적당히 책임지고 폐업한 다음 명의 변경해서 영업을 재개하는 수법이다. 드라마는 이런 식으로 갑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운수회사의 실소유주라고 지목됐던 이도 사실은 2차 바지사장이었고 진짜 실소유주는 그 뒤에 있는 거대 기업이었는데, 그 기업은 원청업체로 많은 하청업체들에게 갑질 영업을 일삼는다. 하청업체는 직원들을 쥐어짜 이윤을 만든다. 직원들은 파견 형식으로 고용돼서 과로, 임금체불, 부당해고로 피해를 입어도 제대로 보상을 못 받는다. 관련 업체들은 파견 직원에게 일을 시키면서도 막상 문제가 터지면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며 선을 긋는다.

이런 구조에서 망가지면 버리는 부품 신세인 직원들을 보며 조진갑은 분노한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짓밟고 버리는 게 아니다!” 이런 조진갑의 대사가 바로 전태일을 떠올리게 했다.

이외에도 그동안 알려졌던 갑질 사례들이 재현되면서 우리 사회 을들의 직장현실 단면이 연달아 드러났다. 워낙 을들의 처지가 열악하다보니 전체적으로 암울하고 답답한 느낌이 있다. 이 작품은 그 문제를 판타지와 적당한 코믹 코드로 해결했다. 조진갑이 흥신소와 완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갑들의 철옹성에 통쾌하고 유쾌한 일격을 가한다는 히어로 판타지로 재미를 살린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감독하는 근로감독관이 히어로가 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그만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을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갑질사회가 근로감독관을 민생 히어로로 호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