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왕이 된 남자’가 후반 들어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월화극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예측하기 어려웠던 성공이다. 이 작품은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광해’의 리메이크작이라서 스토리를 시청자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당연히 신선하지 않았고 큰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엄청난 호평을 받은 원작과 작품성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도 제작진에겐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놀라운 설정으로 원작에서 벗어나는 데에 성공했다. 광대 하선을 가짜 임금으로 모신 도승지가 진짜 임금을 죽인다는 새로운 설정을 도입한 것이다.
원작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기존 역사에서도 벗어났다. 원작은 광대 임금으로 잠시 역사에서 일탈하지만 광해군의 복귀를 통해 기존 역사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진짜 임금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광해군이라는 이름까지 없앴다. 역사에 실존한 왕이 아닌 가상의 왕을 다룬다는 설정인 것이다. 원작 영화의 원 제목은 ‘광해, 왕이 된 남자’였다. 이 드라마는 여기서 ‘광해’를 삭제하고 ‘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만을 부각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런 과감한 설정으로 일단, 중전과의 러브라인이 살아났다. 원작 영화에선 중전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왕이 교체됐다가 원래 왕으로 돌아왔다. 반면에 이 작품에선 기존 왕을 광대가 완전히 대체했고, 처음엔 몰랐던 중전도 이내 남편이 달라졌다는 걸 인지한다. 중전에게 자기 남편이 천민 광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닥친 것이다. 자결을 선택했던 중전은 결국 하선을 향한 애끓는 연심으로 하선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하선도 중전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며 사랑을 표현했다. 그리하여 하선과 중전의 러브스토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원작과는 달리, 드라마에선 작품의 중심축 중 하나로 살아났다.
새로운 설정의 또 다른 효과는 긴장감의 강화다. 원래의 역사도 알고, 원작 영화도 알기 때문에 아무리 드라마가 위기 절정으로 치달아도 시청자가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운 구도였다. 하지만 진짜 왕을 죽이며 기존 영화에서 벗어나고, 광해군이라는 이름을 버려 기존 역사에서도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선 ‘혹시 알던 것과 다른 결말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기대로 끝까지 몰입하게 됐다. 이래서 리메이크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혀 새로운 작품처럼 시청자에게 다가온 것이다. 좋은 리메이크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설정은 바꿨지만 관객을 감동시켰던 영화 속 애민정신 코드는 버리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도 ‘명나라와 이 나라가 부자지간이라면, 난 백성들과 부자지간이요’라며 하선은 기득권을 위해 사대만을 주장하는 대신들과 맞선다. 백성을 위한 대동법 추진 과정은 영화보다 더 자세히 표현됐다. 이야기를 새롭게 변주해도,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코드는 그대로 살리고 오히려 더 풍부하게 구체화한 전략이 주효했다.
‘백일의 낭군님’에 이어 tvN의 두 번째 사극 성공작이다. ‘백일의 낭군님’보다 ‘왕이 된 남자’가 더 정통사극의 분위기에 가까워졌다. 케이블채널이 지상파가 주도했던 사극 영역에 확실히 깃발을 꽂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tvN 드라마는 주로 젊은 층 사이에서 브랜드 파워를 키워왔다. 이젠 중장년층까지 넘보는 국민 채널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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